유흥일기 <룸싸롱편>
유흥일기 <중국마사지편> 에 이어서 작성해보는 <룸싸롱편>입니다.
마사지편보다 가벼운 내용으로 이루어져있으니 이번엔 야설보단 소설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중국마사지편>
https://01.avsee.is/bbs/board.php?bo_table=community&wr_id=2556623
-본 글은 소설입니다. 재미로만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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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오케'란 일본에서 온 말로 흔히 알듯이 노래방에서 술먹고 아가씨랑 노는 유흥을 뜻한다. 한국에선 '노래빠' , '룸싸롱' 정도로 불리고 중국이나 동남아 여행을 가보면 'ktv'라고 하는 것들도 다 같은류의 유흥이다.
보통 시간당 t.c비라는 것을 지불하게 되는데 국내 룸싸롱의 경우 10~12만원 정도의 가격으로 형성돼있고 보통 초이스라는 방식을 통해 1인당 한명의 아가씨를 옆에 끼고 노는 행위를 즐기게 된다. 웬만하면 본방 성행위는 없으며 맥주나 마시며 가슴정도나 만지며 노는 곳이 기본 베이스라고 보면 되겠다. 물론 20~30의 가격대에 본방이있는 풀싸롱이라는 곳도 있고 2차로 데리고 나가는 경우도 있지만 오늘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유흥은 앞서 말한 기본적인 룸싸롱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서의 취직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부모님의 농사 사업을 물려받기 위해서였다. 방학때 종종 알바를 하게됐는데 연차가 차고보니 사업의 벌이가 생각보다 엄청났음을 알게 됐다. 내가 아무리 서울에서 취직을 성공한다해도 벌 수 없는 금액대였다. 부모님의 끊임 없는 러브콜에 취업준비가 집중이 안됐던 것도 한몫했다. 그렇게 난 귀향(혹은 귀농)한 청년이 됐다.
농사일은 할만했다. 상사라고는 부모님이라 불편함없고, 게다가 어렸을때부터 조기교육을 쭉 받아왔던 경력직 아니던가? 나에게 불편한 건 오직 하나였다. 바로 시골이라는 공간에서의 삶, 젊음이 없는 공간이 가져다주는 외로움 하나 뿐이었다. 이 외로움을 느끼는 건 내 고향에서 홀로 남아있던 친구 한놈 또한 마찬가지였다.
친구놈은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취직해 고향에 토박이로 남아있던 놈이다. 건장한 20대 청년이 시골 고향을 지키면 할게 뭐가있을까? 내가 귀향했을 때 다시 본 친구는 자연스레 동네 유흥을 전부 섭렵한 '유흥마스터'가 돼있었다.
원래도 친했지만 귀향 후 이 친구와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주에 3번은 술을 마신 거 같았다. 처음엔 온갖 유흥 썰을 듣는 걸로 만족을 했지만 그 친구도 말하다보니, 나도 듣다보니 역시나 같이가서 놀고 싶다는 생각이 싹트게 됐다.
처음엔 굉장히 많이 거절했다. 서울에 남겨둔 여자친구의 존재 때문이다. 물론 내가 깨끗한 몸은 아니다.(전편 참조) 하지만 확언할 수 있는 것은 연애를 시작하고 나선 지금까지 단 한번도 유흥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녀를 생각해 친구의 유혹을 매번 뿌리쳤다. 하지만 귀향한지 반년 쯤 지났을 때다. 아마 2주에 한번 여자친구를 만날까 말까 할때였다. 말하자면 외로움이 사무칠 때였다.
"야, 노래빠는 괜찮지 않나?" 친구가 술잔을 치켜들며 말했다.
'그게 어떻게 괜찮니 친구야.' 난 속으로 대답했다.
"어차피 관계를 하는것도 아니고 시골에서 헌팅을 하고 놀 수가 있니? 아니면 아는 여자애들이라도 있니? 그냥 우리끼리 노래방 가는 거랑 비슷하다니까?"
난 이번엔 속으로도 대답하지 않았다.
친구는 한숨을 내쉬며 되물었다.
"사줄게."
난 대답했다.
"몇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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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랄친구와 같이 간 곳은 베트남 가라오케였다. t.c비는 한국인 대비 저렴하면서 아가씨들 외모가 준수하다고 한다. 특히 시골 룸싸롱은 흔히 말하는 좆줌마가 오는 경우가 허다한 반면, 베트남 가라오케는 돈은 벌고 싶지만 마사지로 빠지고 싶지는 않은 외모가 평균 이상인 젊은 아가씨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 친구의 주장이다. 결론은 촌동네에서 유흥 할거면 그냥 외국인이랑 놀아라! 가 그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유흥 철학인 것이다. 게다가 말이 안통하는 매력 또한 있을 거라나 뭐라나.
문을 열고 업소로 들어가니 밝은 미소의 유창한 한국어가 돋보이는 베트남 여사장님이 반겨주셨다. 카운터쪽 전경은 보통 노래방과 비슷했다. 다만 동네 노래방보다는 조금 세련된 느낌은 있긴 한 거 같았다. 친구는 능수능란하게 사장님한테 얘기를 하는데 아마 지명을 하는 걸로 보였다. 그러던 중 화장실을 가려고 한 아가씨가 룸에서 나오며 마주치게 됐는데, 그제서야 동남아에 대한 편견이 없어졌다. 확실히 예뻤다.
룸에서 한 10분정도 노래를 불렀을 쯤이었다. 똑똑똑 소리와 함께 홀복을 입은 베트남 아가씨 두명이 들어왔다. 유흥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아는 가장 설레는 순간 아닐까 싶다. 친구놈이 말을 잘해놔서 그런지 빠꾸 시키는 일 없이 한번에 초이스 할 수 있었다. 마음에 들었다는 소리다.
아담한 키에 마른 몸매, 검은 홀복에 구두를 신은 그녀는 자신을 유나라고 소개했다. 한국말은 한 5살 정도 수준으로 구사하는 거처럼 보였다. 입을 열기 전까진 외국인인 걸 알기 힘들 정도에 성형잘된 한국인 느낌이었다.
처음 한 시간은 흔히 노래방에서 놀듯 술이나 퍼마시면서 신나게 놀았다. 참고로 룸싸롱은 보통 맥주가 무한이다. 소주는 가격을 받는 경우도 있고 그냥 주는 경우도 있고 다양하다. 하지만 아가씨들은 웬만해선 소주는 잘 먹지 않는다. 그날 룸의 분위기가 재미있어 마음에 들고 마지막 손님이라는 점이 공존했을 때나 소주를 마시곤 한다.(때때로 술고래 아가씨들은 그냥 무한소주를 먹기도한다.) 양주는 안까봐서 솔직히 모르겠다.(룸에서 양주는 너무 비싸다) 아무튼 한손으론 유나 허벅지를 주무르며 술기운에 미친 듯이 노래를 부르고 나니까 한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룸싸롱이 처음은 아니지만 역시 가성비가 좋은 유흥은 아니라고 다시한번 느낀 한시간이었다.(어쨋든 내돈은 아니다.)
친구와 나는 가볍게 1시간 연장을 했다. 이때부턴 분위기가 사뭇달라지더니 조명이 바뀌고 노래도 클럽노래로 바꿔 놀기 시작했다. 춤은 잘 출줄 몰라서 엉덩이랑 가슴이나 만지며 놀았다. 이쯤되니 친구가 말하는 말이 안통하는 매력이 뭔지 알 거 같았다. 말이 잘 안통해 얘기가 깊게 늘어질 일이 없으니 할 일이라곤 서로 주무르는 일밖에 없는 것이 었다. 술한잔 홀짝하고 스몰토크하고 주무르고, 또 술한잔 홀짝하고 주무르고의 반복이었다.
귀를 때리는 클럽노래에 어지러운 조명, 말이 통하진 않지만 거부하지 않는 파트너. 한참을 만지다보니 친구가 시야에서 사라졌었는데, 친구와 친구파트너는 뒤쪽 한 켠에서 이미 상탈에 물고 빨고 난리도 아니었었다. '와, 어디까지 되는거지? 나도 그냥 다해봐야지.' 라고 생각을 할 찰나에,
똑똑똑 소리와 함께 밝은 미소의 사장님이 문을 살짝 열어 고개만 내밀었다.
그렇다. 우린 또 연장을 했다.
세시간째가 되니 다들 기진맥진해서 춤추는 것은 그만두었다. 대신 술게임을 하며 놀게 됐다. 아가씨들도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는지 소주와 안주 거리를 들고와 엄청난 양의 벌칙주를 만들어 게임을 시작했는데 나도 친구도 그 파트너도, 유나도 술에 떡이 되며 술을 퍼마셨다. 왕게임이 끝났을 무렵엔 모두가 거의 좀비느낌의 반나체 상태가 됐었다. (이 날 생긴 여러개의 키스마크는 주말까진 제발 없어지길 빌면서 냉찜질했다.)
두 아가씨는 화장실을 핑계로 밖을 오고가며 할때마다 요상한 것들을 가져왔는데 그 중 하나는 해피벌룬이었고 하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음료였다.(나중에 알고보니 음료는 그냥 숙취음료였다.) 음료 때문이었는지 풍선때문이었는지 몰라도 정신의 상태가 극한까지 고양돼서 몸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몸을 주체할 수 없던 건 친구도, 친구 파트너도 유나도 다 마찬가지였다.
마지막 피날레로 가장 눈부신 조명에, 가장 시끄러운 음악, 알 수 없는 뿌연 연기로 각자 파트너에게 집중할 수 있는 타임을 가졌다. (연기 때문에 주변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만취 상태로 그녀의 몸을 탐닉하기 시작했다. 형식적인 저항을 뿌리치고 나는 계속해서 그녀를 삼켰다. 못이기는 척 그녀도 오케이하고 서로가 마약에 취한듯 이끌리고 있을 때
누가 자꾸
"오빠!"
"오빠!"
하고 부르는 것이었다. 이상하다.
"오빠아!!!!!!"
그제서야 몽롱한 정신이 조금 깨어나고 눈을 실밥만큼 뜰 수가 있었다. 머리가 열조각으로 쪼개질 것 같은 고통이 몰려왔다. 뇌는 더 자야된다고 신호를 보내고 있지만 내가 잠에서 깨야되는 이유가 있었기에 꾹 참았다. 왜냐하면
'여긴 어디지?'
내가 갑자기 모르는 곳에서 눈을 떴기 때문이다. 상황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화장대에 널부러진 화장품들, 전신거울에 정신없이 붙어있는 이상한 캐릭터 스티커, 내가 누워있는 침대의 향기까지. 영락없는 여자의 자취방이었다.(약간의 외국인 냄새?도 있었다.) 그리고 나를 부르던 사람은 유나였다.
나중에 친구놈 말로는 내가 유나와 포개진 채로 잠이들어서 업어서 데리고 나왔다고 한다. 여기는 유나와 그 친구놈 파트너(이름이 세리라고 했나 뭐라나)가 같이 사는 자취방이라고 했다. 세리와 친구놈은 나를 자취방에 눕혀놓고 모텔로 갔다고 한다.
유나 말로는 그 둘이 나가고 나니까 잠에서 깬 내가 도킹을 시도하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새벽 3시쯤에 만취상태에 인사불성인 남자가 발기가 될리 만무했다. 달래주고 재우니까 1분도 안돼서 잠에 다시 들었다고 한다. 근데 이 취객이 오후 3시까지 안 깰줄은 몰랐다면서 시간을 가리키며 귀엽게 성질을 내더라?
출근 언제냐고 물어보고 6시 쯤이라길래, 술다깼다고 맨정신이라고 다시 한번 도킹시도했는데 아쉽게도 시원하게 까였다.
그리고 배터리가 다돼서 폰이 꺼져있었다는 것을 그 자취방을 나오기 10분전, 그니까 오후 4시좀 넘어서 인지했다. 내가 친구와 술마시기 전까지 여자친구 때문에 유흥을 하지 않겠다고 한 사람이었던 것 또한 그제서야 떠올랐다. 머리가 뜨거워졌다. 나는 이 핸드폰을 켜도 될지, 말아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유흥은 사람을 점점 구렁텅이에 빠트리는 거 같다. 나는 인간 말종이라는 말도 부족한 사람이 됐음을 느끼며 담배나 뻑뻑 태웠다.
그래도 집에 도착해 충전을 하고 용기를 내어 핸드폰을 켰다. 역시나 부재중이 무섭게 수십통 찍혀있었다. 엄청난 죄책감이 몰려왔다. 그리고 친구놈이 보낸 카톡도 있었다.
'브라더~ 미안한데 내가 한시간은 살 수 있는데 나머지 두 시간은 뿜빠치면 안될까? ㅜㅜ 부탁할게 나 이번 달에 카드값 오바됐어.'
나는 다시 한번 담배나 뻑뻑 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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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은 소설입니다. 재미로만 봐주세요. -
다음편은 각잡고 <스웨디시편>으로 와보겠습니다. ㅂㅂ~
마사지편보다 가벼운 내용으로 이루어져있으니 이번엔 야설보단 소설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중국마사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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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소설입니다. 재미로만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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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오케'란 일본에서 온 말로 흔히 알듯이 노래방에서 술먹고 아가씨랑 노는 유흥을 뜻한다. 한국에선 '노래빠' , '룸싸롱' 정도로 불리고 중국이나 동남아 여행을 가보면 'ktv'라고 하는 것들도 다 같은류의 유흥이다.
보통 시간당 t.c비라는 것을 지불하게 되는데 국내 룸싸롱의 경우 10~12만원 정도의 가격으로 형성돼있고 보통 초이스라는 방식을 통해 1인당 한명의 아가씨를 옆에 끼고 노는 행위를 즐기게 된다. 웬만하면 본방 성행위는 없으며 맥주나 마시며 가슴정도나 만지며 노는 곳이 기본 베이스라고 보면 되겠다. 물론 20~30의 가격대에 본방이있는 풀싸롱이라는 곳도 있고 2차로 데리고 나가는 경우도 있지만 오늘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유흥은 앞서 말한 기본적인 룸싸롱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서의 취직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부모님의 농사 사업을 물려받기 위해서였다. 방학때 종종 알바를 하게됐는데 연차가 차고보니 사업의 벌이가 생각보다 엄청났음을 알게 됐다. 내가 아무리 서울에서 취직을 성공한다해도 벌 수 없는 금액대였다. 부모님의 끊임 없는 러브콜에 취업준비가 집중이 안됐던 것도 한몫했다. 그렇게 난 귀향(혹은 귀농)한 청년이 됐다.
농사일은 할만했다. 상사라고는 부모님이라 불편함없고, 게다가 어렸을때부터 조기교육을 쭉 받아왔던 경력직 아니던가? 나에게 불편한 건 오직 하나였다. 바로 시골이라는 공간에서의 삶, 젊음이 없는 공간이 가져다주는 외로움 하나 뿐이었다. 이 외로움을 느끼는 건 내 고향에서 홀로 남아있던 친구 한놈 또한 마찬가지였다.
친구놈은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취직해 고향에 토박이로 남아있던 놈이다. 건장한 20대 청년이 시골 고향을 지키면 할게 뭐가있을까? 내가 귀향했을 때 다시 본 친구는 자연스레 동네 유흥을 전부 섭렵한 '유흥마스터'가 돼있었다.
원래도 친했지만 귀향 후 이 친구와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주에 3번은 술을 마신 거 같았다. 처음엔 온갖 유흥 썰을 듣는 걸로 만족을 했지만 그 친구도 말하다보니, 나도 듣다보니 역시나 같이가서 놀고 싶다는 생각이 싹트게 됐다.
처음엔 굉장히 많이 거절했다. 서울에 남겨둔 여자친구의 존재 때문이다. 물론 내가 깨끗한 몸은 아니다.(전편 참조) 하지만 확언할 수 있는 것은 연애를 시작하고 나선 지금까지 단 한번도 유흥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녀를 생각해 친구의 유혹을 매번 뿌리쳤다. 하지만 귀향한지 반년 쯤 지났을 때다. 아마 2주에 한번 여자친구를 만날까 말까 할때였다. 말하자면 외로움이 사무칠 때였다.
"야, 노래빠는 괜찮지 않나?" 친구가 술잔을 치켜들며 말했다.
'그게 어떻게 괜찮니 친구야.' 난 속으로 대답했다.
"어차피 관계를 하는것도 아니고 시골에서 헌팅을 하고 놀 수가 있니? 아니면 아는 여자애들이라도 있니? 그냥 우리끼리 노래방 가는 거랑 비슷하다니까?"
난 이번엔 속으로도 대답하지 않았다.
친구는 한숨을 내쉬며 되물었다.
"사줄게."
난 대답했다.
"몇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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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랄친구와 같이 간 곳은 베트남 가라오케였다. t.c비는 한국인 대비 저렴하면서 아가씨들 외모가 준수하다고 한다. 특히 시골 룸싸롱은 흔히 말하는 좆줌마가 오는 경우가 허다한 반면, 베트남 가라오케는 돈은 벌고 싶지만 마사지로 빠지고 싶지는 않은 외모가 평균 이상인 젊은 아가씨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 친구의 주장이다. 결론은 촌동네에서 유흥 할거면 그냥 외국인이랑 놀아라! 가 그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유흥 철학인 것이다. 게다가 말이 안통하는 매력 또한 있을 거라나 뭐라나.
문을 열고 업소로 들어가니 밝은 미소의 유창한 한국어가 돋보이는 베트남 여사장님이 반겨주셨다. 카운터쪽 전경은 보통 노래방과 비슷했다. 다만 동네 노래방보다는 조금 세련된 느낌은 있긴 한 거 같았다. 친구는 능수능란하게 사장님한테 얘기를 하는데 아마 지명을 하는 걸로 보였다. 그러던 중 화장실을 가려고 한 아가씨가 룸에서 나오며 마주치게 됐는데, 그제서야 동남아에 대한 편견이 없어졌다. 확실히 예뻤다.
룸에서 한 10분정도 노래를 불렀을 쯤이었다. 똑똑똑 소리와 함께 홀복을 입은 베트남 아가씨 두명이 들어왔다. 유흥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아는 가장 설레는 순간 아닐까 싶다. 친구놈이 말을 잘해놔서 그런지 빠꾸 시키는 일 없이 한번에 초이스 할 수 있었다. 마음에 들었다는 소리다.
아담한 키에 마른 몸매, 검은 홀복에 구두를 신은 그녀는 자신을 유나라고 소개했다. 한국말은 한 5살 정도 수준으로 구사하는 거처럼 보였다. 입을 열기 전까진 외국인인 걸 알기 힘들 정도에 성형잘된 한국인 느낌이었다.
처음 한 시간은 흔히 노래방에서 놀듯 술이나 퍼마시면서 신나게 놀았다. 참고로 룸싸롱은 보통 맥주가 무한이다. 소주는 가격을 받는 경우도 있고 그냥 주는 경우도 있고 다양하다. 하지만 아가씨들은 웬만해선 소주는 잘 먹지 않는다. 그날 룸의 분위기가 재미있어 마음에 들고 마지막 손님이라는 점이 공존했을 때나 소주를 마시곤 한다.(때때로 술고래 아가씨들은 그냥 무한소주를 먹기도한다.) 양주는 안까봐서 솔직히 모르겠다.(룸에서 양주는 너무 비싸다) 아무튼 한손으론 유나 허벅지를 주무르며 술기운에 미친 듯이 노래를 부르고 나니까 한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룸싸롱이 처음은 아니지만 역시 가성비가 좋은 유흥은 아니라고 다시한번 느낀 한시간이었다.(어쨋든 내돈은 아니다.)
친구와 나는 가볍게 1시간 연장을 했다. 이때부턴 분위기가 사뭇달라지더니 조명이 바뀌고 노래도 클럽노래로 바꿔 놀기 시작했다. 춤은 잘 출줄 몰라서 엉덩이랑 가슴이나 만지며 놀았다. 이쯤되니 친구가 말하는 말이 안통하는 매력이 뭔지 알 거 같았다. 말이 잘 안통해 얘기가 깊게 늘어질 일이 없으니 할 일이라곤 서로 주무르는 일밖에 없는 것이 었다. 술한잔 홀짝하고 스몰토크하고 주무르고, 또 술한잔 홀짝하고 주무르고의 반복이었다.
귀를 때리는 클럽노래에 어지러운 조명, 말이 통하진 않지만 거부하지 않는 파트너. 한참을 만지다보니 친구가 시야에서 사라졌었는데, 친구와 친구파트너는 뒤쪽 한 켠에서 이미 상탈에 물고 빨고 난리도 아니었었다. '와, 어디까지 되는거지? 나도 그냥 다해봐야지.' 라고 생각을 할 찰나에,
똑똑똑 소리와 함께 밝은 미소의 사장님이 문을 살짝 열어 고개만 내밀었다.
그렇다. 우린 또 연장을 했다.
세시간째가 되니 다들 기진맥진해서 춤추는 것은 그만두었다. 대신 술게임을 하며 놀게 됐다. 아가씨들도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는지 소주와 안주 거리를 들고와 엄청난 양의 벌칙주를 만들어 게임을 시작했는데 나도 친구도 그 파트너도, 유나도 술에 떡이 되며 술을 퍼마셨다. 왕게임이 끝났을 무렵엔 모두가 거의 좀비느낌의 반나체 상태가 됐었다. (이 날 생긴 여러개의 키스마크는 주말까진 제발 없어지길 빌면서 냉찜질했다.)
두 아가씨는 화장실을 핑계로 밖을 오고가며 할때마다 요상한 것들을 가져왔는데 그 중 하나는 해피벌룬이었고 하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음료였다.(나중에 알고보니 음료는 그냥 숙취음료였다.) 음료 때문이었는지 풍선때문이었는지 몰라도 정신의 상태가 극한까지 고양돼서 몸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몸을 주체할 수 없던 건 친구도, 친구 파트너도 유나도 다 마찬가지였다.
마지막 피날레로 가장 눈부신 조명에, 가장 시끄러운 음악, 알 수 없는 뿌연 연기로 각자 파트너에게 집중할 수 있는 타임을 가졌다. (연기 때문에 주변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만취 상태로 그녀의 몸을 탐닉하기 시작했다. 형식적인 저항을 뿌리치고 나는 계속해서 그녀를 삼켰다. 못이기는 척 그녀도 오케이하고 서로가 마약에 취한듯 이끌리고 있을 때
누가 자꾸
"오빠!"
"오빠!"
하고 부르는 것이었다. 이상하다.
"오빠아!!!!!!"
그제서야 몽롱한 정신이 조금 깨어나고 눈을 실밥만큼 뜰 수가 있었다. 머리가 열조각으로 쪼개질 것 같은 고통이 몰려왔다. 뇌는 더 자야된다고 신호를 보내고 있지만 내가 잠에서 깨야되는 이유가 있었기에 꾹 참았다. 왜냐하면
'여긴 어디지?'
내가 갑자기 모르는 곳에서 눈을 떴기 때문이다. 상황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화장대에 널부러진 화장품들, 전신거울에 정신없이 붙어있는 이상한 캐릭터 스티커, 내가 누워있는 침대의 향기까지. 영락없는 여자의 자취방이었다.(약간의 외국인 냄새?도 있었다.) 그리고 나를 부르던 사람은 유나였다.
나중에 친구놈 말로는 내가 유나와 포개진 채로 잠이들어서 업어서 데리고 나왔다고 한다. 여기는 유나와 그 친구놈 파트너(이름이 세리라고 했나 뭐라나)가 같이 사는 자취방이라고 했다. 세리와 친구놈은 나를 자취방에 눕혀놓고 모텔로 갔다고 한다.
유나 말로는 그 둘이 나가고 나니까 잠에서 깬 내가 도킹을 시도하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새벽 3시쯤에 만취상태에 인사불성인 남자가 발기가 될리 만무했다. 달래주고 재우니까 1분도 안돼서 잠에 다시 들었다고 한다. 근데 이 취객이 오후 3시까지 안 깰줄은 몰랐다면서 시간을 가리키며 귀엽게 성질을 내더라?
출근 언제냐고 물어보고 6시 쯤이라길래, 술다깼다고 맨정신이라고 다시 한번 도킹시도했는데 아쉽게도 시원하게 까였다.
그리고 배터리가 다돼서 폰이 꺼져있었다는 것을 그 자취방을 나오기 10분전, 그니까 오후 4시좀 넘어서 인지했다. 내가 친구와 술마시기 전까지 여자친구 때문에 유흥을 하지 않겠다고 한 사람이었던 것 또한 그제서야 떠올랐다. 머리가 뜨거워졌다. 나는 이 핸드폰을 켜도 될지, 말아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유흥은 사람을 점점 구렁텅이에 빠트리는 거 같다. 나는 인간 말종이라는 말도 부족한 사람이 됐음을 느끼며 담배나 뻑뻑 태웠다.
그래도 집에 도착해 충전을 하고 용기를 내어 핸드폰을 켰다. 역시나 부재중이 무섭게 수십통 찍혀있었다. 엄청난 죄책감이 몰려왔다. 그리고 친구놈이 보낸 카톡도 있었다.
'브라더~ 미안한데 내가 한시간은 살 수 있는데 나머지 두 시간은 뿜빠치면 안될까? ㅜㅜ 부탁할게 나 이번 달에 카드값 오바됐어.'
나는 다시 한번 담배나 뻑뻑 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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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편은 각잡고 <스웨디시편>으로 와보겠습니다. ㅂㅂ~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