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사조영웅전 12화
제 12화: 엇갈린 운명, 피로 물든 옥(玉)
금나라의 수도 중도(中都)는 겉보기엔 화려했지만, 그 속은 온갖 음모와 욕망으로 들끓고 있었다. 형인이 조왕부 별채에서 포석약과의 밀회를 즐기며 백년설삼의 기운을 갈무리하는 동안, 곽정과 황용은 객잔에서 때아닌 소동에 휘말렸다.
삼두교 후통해가 전날 황용(거지 항색 소년)에게 당한 굴욕을 갚기 위해 객잔까지 쫓아온 것이다. 황용은 특유의 기지와 날렵함으로 그를 농락하며 달아났고, 곽정은 ‘저 소형제(小兄弟)를 도와야 한다’는 순진한 생각에 무작정 그 뒤를 쫓았다. 한바탕 소란이 벌어지던 중, 다행히 근처를 지나던 전진칠자 중 하나인 옥양자 왕처일이 그 광경을 목격하고 후통해를 꾸짖으며 단숨에 제압, 황용과 곽정을 위기에서 구해냈다.
며칠 후, 왕처일의 임시 거처에 모인 세 사람. 곽정은 여전히 비무초친 때 완안강의 무례함과 그로 인해 형인(한 살 어린 동생뻘 친구)이 부상당했던 일(물론 형인의 치밀한 연기였지만)에 대한 분노를 삭이지 못했다. 그는 기어코 완안강에게 직접 가서 따져 묻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도사님, 그 완안강이라는 자의 오만방자함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습니다! 형인이 그 자 때문에 큰 상처를 입었는데, 어찌 이대로 넘어갈 수 있겠습니까!"
왕처일은 곽정의 의협심은 가상하나, 조왕부의 세력을 고려할 때 경솔한 행동이라며 만류했다. 옆에 있던 황용 역시 "곽 형, 너무 서두르지 마시오. 저들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니 신중해야 하오."라며 그의 성급함을 지적했다. 하지만 한번 결심하면 꺾이지 않는 곽정의 우직한 성미는 누구도 말릴 수 없었다. 결국 왕처일은 곽정의 고집에 못 이겨, 황용과 함께 다시 조왕부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조왕부에서 그들을 맞이한 것은 완안강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곁에는 음흉한 미소의 백타산 소장주 구양극, 탐욕스러운 눈빛의 양자옹, 그리고 전날 곽정과 황용에게 혼쭐이 났던 후통해까지 버티고 서 있었다. 분위기는 처음부터 험악했다.
"왕 도장께서 또 어인 행차십니까?" 완안강이 거만하게 물었다. 왕처일이 비무초친 때의 무례함을 꾸짖자, 그는 "그저 여흥으로 겨뤄본 것뿐"이라며 능글맞게 받아넘겼다. 하지만 속으로는 왕처일의 존재가 사부 구처기에게 알려질까 불안하여, 양자옹과 구양극에게 눈짓으로 그를 처리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양자옹이 나서서 왕처일에게 '내공 수위를 겨뤄보자'며 접근했다. 손바닥을 마주 대는 순간, 양자옹은 은밀하게 필생의 독공인 '복사독장(蝮蛇毒掌)'을 사용했다. 왕처일은 순간적으로 독수를 간파하고 전진 내공으로 막아냈지만, 이미 상당량의 독기가 그의 몸 안으로 스며든 후였다. 그는 자신의 독장을 막아낸 왕처일의 내공에 놀랐고, 왕처일 역시 속으로 경악하며 내색하지 않으려 애썼다.
더 이상의 충돌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왕처일은 곽정과 황용을 데리고 서둘러 조왕부를 나섰다. 그러나 왕부 대문을 나서자마자, 참았던 독기가 급격히 퍼지며 그는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도사님!" 곽정과 황용이 놀라 그를 부축했다. 왕처일은 희미한 의식 속에서 곽정에게 자신을 업고 속히 은신처를 찾으라고 명했다. 우직한 곽정은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얼마 전 신세를 졌던 목역 부녀의 허름한 숙소를 떠올리고 그곳으로 향했다.
목역 부녀는 다친 왕처일을 보고 놀랐지만, 기꺼이 그들을 받아주었다. 하지만 그곳에 왕처일의 독을 해독할 약재가 있을 리 만무했다. 왕처일이 힘겹게 해독에 필요한 몇 가지 희귀 약초의 이름을 말해주자, 곽정과 황용은 즉시 약재를 구하러 거리로 나섰다. 그러나 중도의 모든 약재상에서는 이미 조왕부에서 그 약초들을 모조리 사들여 갔다는 절망적인 대답만 돌아왔다.
"이럴 수가! 조왕부 놈들이 일부러 이런 짓을…" 곽정이 분노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흥, 그럼 그 잘난 왕부에 직접 가서 훔쳐 오면 될 것 아니오!" 황용이 당돌하게 말했다. 하지만 곽정은 "아니다, 위험해. 일단 돌아가서 왕 도장께 다시 여쭤보자."라며 신중론을 펼쳤다. 황용은 곽정의 우둔함에 답답함을 느끼며 혀를 찼다. "곽 형은 여기 계시오! 나 혼자 다녀오겠소!" 그녀는 곽정의 만류를 뿌리치고 조왕부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갔다.
한편, 조왕부 별채에서는 형인이 백년설삼과 포석약과의 밀회를 통해 얻은 강력한 기운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있었다. 단전에는 용암처럼 뜨겁고 거대한 내공이 넘실거렸다. 그가 막 운기조식을 마치고 몸을 일으키려 할 때, 창밖에서 익숙한 기척과 함께 다급하게 움직이는 작은 그림자를 발견했다. 거지 소년 행색의 황용이었다!
"호오, 황용이 여기까지 왔군." 형인은 흥미로운 미소를 지으며 소리 없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 황용은 담을 넘어 약초가 있을 법한 후원으로 숨어들었지만, 그곳에는 이미 삼엄한 경비가 깔려 있었다. 그리고 약초밭 한가운데, 기이한 붉은 빛을 내뿜는 거대한 뱀 한 마리가 버티고 있었다! 양자옹의 보물 뱀이었다.
황용이 뱀을 보고 잠시 망설이는 사이, 형인이 그녀 앞에 나타나며 속삭였다.
"소형제, 여긴 위험하니 내게 맡기게."
"형인 형? 형이 여긴 어쩐 일로… 몸은 괜찮소?" 황용은 형인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놀랐지만, 내심 반가움을 느꼈다.
"보다시피 멀쩡하네. 그보다 저 뱀이 문제로군." 형인은 원작의 내용을 떠올리며 황용의 의심을 피할 계획을 세웠다. 그는 일부러 황용을 보호하는 척하며 뱀에게 접근했다. 뱀은 맹렬하게 달려들었고, 형인은 마치 힘겹게 싸우는 척하며 뱀의 거대한 몸뚱이에 일부러 휘감겼다. 그리고 뱀이 자신을 조여오는 그 순간, 황용의 시야에서 벗어난 각도에서 재빨리 뱀의 목덜미를 물어뜯어 그 뜨겁고 비린 피를 삼켰다! 엄청난 열기와 영기가 단전으로 쏟아져 들어오며 백년설삼의 기운과 뒤섞여 폭발적인 힘을 만들어냈다.
"크헉!" 형인은 마치 뱀에게 졸려 질식할 뻔한 것처럼 거친 숨을 몰아쉬며, 온 힘을 다해 뱀의 몸통을 풀어내고는 결정타를 날려 숨통을 끊었다. 그는 일부러 식은땀을 흘리고 탈진한 듯 바닥에 주저앉으며 황용에게 말했다.
"괜찮소? 뱀에 물린 건 아니오?" 황용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하아… 하아… 괜찮네, 소형제. 물린 건 아니지만… 힘이 어찌나 센지… 죽는 줄 알았네. 잠시 숨 좀 돌리고… 어서 약초나 챙기세." 형인은 일부러 힘겹게 말하며 둘러댔다. 황용은 여전히 뭔가 석연치 않다는 눈초리를 보냈지만, 위급한 상황이었기에 더 이상 묻지 않고 형인과 함께 재빨리 해독 약초들을 챙겨 조왕부를 빠져나왔다.
그들은 서둘러 목역의 숙소로 돌아와 왕처일에게 약을 달여 먹였다. 다행히 왕처일은 고비를 넘겼지만, 독기가 워낙 강했던 탓에 완전히 회복되지 못하고 여전히 운기조식으로 정양하며 몸을 추슬러야 하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 사이, 자신의 보물 뱀이 처참하게 죽고 피까지 빨린 것을 발견한 양자옹은 이성을 잃고 분노하여 범인을 찾아 나섰다. 그는 뱀의 피 냄새를 추적하여 결국 목역의 숙소까지 쫓아왔고, 그의 곁에는 음흉한 미소를 띤 구양극까지 함께였다.
"감히 내 보물 뱀을 죽이고 그 피까지 탐해? 목숨으로 갚아라!" 양자옹이 광기 어린 눈으로 소리쳤다. 구양극 역시 "왕 도사를 숨겨준 죄까지 더해 모조리 죽여 없애라!"며 살기를 드러냈다.
격전이 벌어졌다. 왕처일은 싸울 수 없는 상태였고, 곽정은 아직 저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형인이 앞으로 나서 양자옹과 구양극을 동시에 상대했다. 그는 자신의 진짜 실력을 숨기고 일부러 백중세를 이루는 것처럼 싸우며 시간을 끌었다. 황용은 옆에서 기지를 발휘해 그들을 교란시키려 애썼다.
혼전 속에서 형인이 두 고수를 상대하느라 잠시 빈틈을 보이자, 양자옹이 곽정에게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곽정이 힘겹게 막아내는 것을 본 목역이 그를 돕기 위해 뛰쳐나왔다. 바로 그 순간, 구양극이 교묘하게 곽정을 노리고 날린 암기(독침)을 목역이 대신 맞고 말았다!
"아버지!" 목염자의 처절한 비명과 함께 목역은 검붉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그는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싸우고 있는 형인의 손을 잡고 힘겹게 말했다.
"젊은이… 내 딸… 염자를… 부디… 부탁… 하네…"
"아버지! 안 돼요! 아버지!" 목염자가 오열했지만, 목역은 이미 숨을 거둔 후였다. 구양극은 이 틈을 타 목염자를 납치하려 했지만, 목역의 죽음에 분노한 형인이 잠시 본 실력을 드러내며 막아섰다. 그의 기세는 이전과 확연히 달라져 있었고, 백년설삼과 뱀 피로 증폭된 내공은 구양극조차 정면으로 감당하기 어려웠다. 구양극은 형인과의 짧은 격돌 끝에 목염자를 포기하는 대신, 그녀의 목에 걸려 있던, 부러진 옥 조각이 달린 붉은 실 목걸이를 낚아채 달아났다. 양자옹 역시 형인의 예상치 못한 강함에 놀라 물러났다.
조왕부로 돌아온 구양극은 완안강에게 목염자 납치 실패를 보고하며, 대신 빼앗아 온 목걸이를 건넸다. 완안강은 부러진 옥 조각을 보자 어딘가 낯익다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그것은 자신의 어머니 포석약이 소중히 간직하던 목걸이의 반쪽과 너무나 흡사했다. 그는 곧장 포석약의 처소로 달려가 그녀에게 목걸이를 내밀었다.
"어머니, 이 옥 조각… 혹시 아시는 것입니까?"
포석약은 부러진 옥 조각을 보는 순간 얼굴이 창백하게 굳어졌다. 그것은 틀림없이 오래전, 첫 정인이었던 양철심과 나눠 가졌던 애틋한 사랑의 징표였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놀랍도록 빨리 차갑게 식어 내렸다. 형인이라는 젊고 강렬한 남자에게 몸과 마음을 모두 빼앗긴 후, 과거의 희미한 그림자 따위는 더 이상 그녀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래, 아주 오래전… 덧없는 인연의 증표였지. 허나 그 인연은 이미 먼지처럼 사라진 지 오래다."
포석약은 무심하고 차갑게 대답하며 옥 조각을 완안강에게 되돌려주었다.
"강아,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네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 것인지, 너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야."
그녀의 목소리에는 과거의 인연에 대한 미련이나 슬픔 대신, 오직 현실에 대한 냉철함과 어딘가를 향한 은밀한 열망만이 담겨 있을 뿐이었다. 완안강은 그런 어머니의 싸늘한 변화를 미처 깨닫지 못한 채,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손안의 옥 조각만을 내려다볼 뿐이었다. 포석약의 마음은 이미 온전히 형인에게 사로잡혀 있었고, 양철심의 죽음이라는 비극조차 그녀의 마음을 더 이상 흔들지 못했다.
한편,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황용은 곽정의 성급하고 고지식한 행동이 결국 목역의 죽음이라는 비극을 초래했다는 생각에 희미한 실망감을 느꼈다. 반면, 위기의 순간에 (겉보기에는) 용감하게 맞서 싸우고, 슬픔에 빠진 목염자를 챙기는 듯한 형인에게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약간의 호감과 함께 더 깊은 흥미와 의문을 동시에 느끼게 되었다.
또 다음화를 위해 쉬어 가네요.
금나라의 수도 중도(中都)는 겉보기엔 화려했지만, 그 속은 온갖 음모와 욕망으로 들끓고 있었다. 형인이 조왕부 별채에서 포석약과의 밀회를 즐기며 백년설삼의 기운을 갈무리하는 동안, 곽정과 황용은 객잔에서 때아닌 소동에 휘말렸다.
삼두교 후통해가 전날 황용(거지 항색 소년)에게 당한 굴욕을 갚기 위해 객잔까지 쫓아온 것이다. 황용은 특유의 기지와 날렵함으로 그를 농락하며 달아났고, 곽정은 ‘저 소형제(小兄弟)를 도와야 한다’는 순진한 생각에 무작정 그 뒤를 쫓았다. 한바탕 소란이 벌어지던 중, 다행히 근처를 지나던 전진칠자 중 하나인 옥양자 왕처일이 그 광경을 목격하고 후통해를 꾸짖으며 단숨에 제압, 황용과 곽정을 위기에서 구해냈다.
며칠 후, 왕처일의 임시 거처에 모인 세 사람. 곽정은 여전히 비무초친 때 완안강의 무례함과 그로 인해 형인(한 살 어린 동생뻘 친구)이 부상당했던 일(물론 형인의 치밀한 연기였지만)에 대한 분노를 삭이지 못했다. 그는 기어코 완안강에게 직접 가서 따져 묻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도사님, 그 완안강이라는 자의 오만방자함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습니다! 형인이 그 자 때문에 큰 상처를 입었는데, 어찌 이대로 넘어갈 수 있겠습니까!"
왕처일은 곽정의 의협심은 가상하나, 조왕부의 세력을 고려할 때 경솔한 행동이라며 만류했다. 옆에 있던 황용 역시 "곽 형, 너무 서두르지 마시오. 저들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니 신중해야 하오."라며 그의 성급함을 지적했다. 하지만 한번 결심하면 꺾이지 않는 곽정의 우직한 성미는 누구도 말릴 수 없었다. 결국 왕처일은 곽정의 고집에 못 이겨, 황용과 함께 다시 조왕부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조왕부에서 그들을 맞이한 것은 완안강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곁에는 음흉한 미소의 백타산 소장주 구양극, 탐욕스러운 눈빛의 양자옹, 그리고 전날 곽정과 황용에게 혼쭐이 났던 후통해까지 버티고 서 있었다. 분위기는 처음부터 험악했다.
"왕 도장께서 또 어인 행차십니까?" 완안강이 거만하게 물었다. 왕처일이 비무초친 때의 무례함을 꾸짖자, 그는 "그저 여흥으로 겨뤄본 것뿐"이라며 능글맞게 받아넘겼다. 하지만 속으로는 왕처일의 존재가 사부 구처기에게 알려질까 불안하여, 양자옹과 구양극에게 눈짓으로 그를 처리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양자옹이 나서서 왕처일에게 '내공 수위를 겨뤄보자'며 접근했다. 손바닥을 마주 대는 순간, 양자옹은 은밀하게 필생의 독공인 '복사독장(蝮蛇毒掌)'을 사용했다. 왕처일은 순간적으로 독수를 간파하고 전진 내공으로 막아냈지만, 이미 상당량의 독기가 그의 몸 안으로 스며든 후였다. 그는 자신의 독장을 막아낸 왕처일의 내공에 놀랐고, 왕처일 역시 속으로 경악하며 내색하지 않으려 애썼다.
더 이상의 충돌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왕처일은 곽정과 황용을 데리고 서둘러 조왕부를 나섰다. 그러나 왕부 대문을 나서자마자, 참았던 독기가 급격히 퍼지며 그는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도사님!" 곽정과 황용이 놀라 그를 부축했다. 왕처일은 희미한 의식 속에서 곽정에게 자신을 업고 속히 은신처를 찾으라고 명했다. 우직한 곽정은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얼마 전 신세를 졌던 목역 부녀의 허름한 숙소를 떠올리고 그곳으로 향했다.
목역 부녀는 다친 왕처일을 보고 놀랐지만, 기꺼이 그들을 받아주었다. 하지만 그곳에 왕처일의 독을 해독할 약재가 있을 리 만무했다. 왕처일이 힘겹게 해독에 필요한 몇 가지 희귀 약초의 이름을 말해주자, 곽정과 황용은 즉시 약재를 구하러 거리로 나섰다. 그러나 중도의 모든 약재상에서는 이미 조왕부에서 그 약초들을 모조리 사들여 갔다는 절망적인 대답만 돌아왔다.
"이럴 수가! 조왕부 놈들이 일부러 이런 짓을…" 곽정이 분노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흥, 그럼 그 잘난 왕부에 직접 가서 훔쳐 오면 될 것 아니오!" 황용이 당돌하게 말했다. 하지만 곽정은 "아니다, 위험해. 일단 돌아가서 왕 도장께 다시 여쭤보자."라며 신중론을 펼쳤다. 황용은 곽정의 우둔함에 답답함을 느끼며 혀를 찼다. "곽 형은 여기 계시오! 나 혼자 다녀오겠소!" 그녀는 곽정의 만류를 뿌리치고 조왕부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갔다.
한편, 조왕부 별채에서는 형인이 백년설삼과 포석약과의 밀회를 통해 얻은 강력한 기운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있었다. 단전에는 용암처럼 뜨겁고 거대한 내공이 넘실거렸다. 그가 막 운기조식을 마치고 몸을 일으키려 할 때, 창밖에서 익숙한 기척과 함께 다급하게 움직이는 작은 그림자를 발견했다. 거지 소년 행색의 황용이었다!
"호오, 황용이 여기까지 왔군." 형인은 흥미로운 미소를 지으며 소리 없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 황용은 담을 넘어 약초가 있을 법한 후원으로 숨어들었지만, 그곳에는 이미 삼엄한 경비가 깔려 있었다. 그리고 약초밭 한가운데, 기이한 붉은 빛을 내뿜는 거대한 뱀 한 마리가 버티고 있었다! 양자옹의 보물 뱀이었다.
황용이 뱀을 보고 잠시 망설이는 사이, 형인이 그녀 앞에 나타나며 속삭였다.
"소형제, 여긴 위험하니 내게 맡기게."
"형인 형? 형이 여긴 어쩐 일로… 몸은 괜찮소?" 황용은 형인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놀랐지만, 내심 반가움을 느꼈다.
"보다시피 멀쩡하네. 그보다 저 뱀이 문제로군." 형인은 원작의 내용을 떠올리며 황용의 의심을 피할 계획을 세웠다. 그는 일부러 황용을 보호하는 척하며 뱀에게 접근했다. 뱀은 맹렬하게 달려들었고, 형인은 마치 힘겹게 싸우는 척하며 뱀의 거대한 몸뚱이에 일부러 휘감겼다. 그리고 뱀이 자신을 조여오는 그 순간, 황용의 시야에서 벗어난 각도에서 재빨리 뱀의 목덜미를 물어뜯어 그 뜨겁고 비린 피를 삼켰다! 엄청난 열기와 영기가 단전으로 쏟아져 들어오며 백년설삼의 기운과 뒤섞여 폭발적인 힘을 만들어냈다.
"크헉!" 형인은 마치 뱀에게 졸려 질식할 뻔한 것처럼 거친 숨을 몰아쉬며, 온 힘을 다해 뱀의 몸통을 풀어내고는 결정타를 날려 숨통을 끊었다. 그는 일부러 식은땀을 흘리고 탈진한 듯 바닥에 주저앉으며 황용에게 말했다.
"괜찮소? 뱀에 물린 건 아니오?" 황용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하아… 하아… 괜찮네, 소형제. 물린 건 아니지만… 힘이 어찌나 센지… 죽는 줄 알았네. 잠시 숨 좀 돌리고… 어서 약초나 챙기세." 형인은 일부러 힘겹게 말하며 둘러댔다. 황용은 여전히 뭔가 석연치 않다는 눈초리를 보냈지만, 위급한 상황이었기에 더 이상 묻지 않고 형인과 함께 재빨리 해독 약초들을 챙겨 조왕부를 빠져나왔다.
그들은 서둘러 목역의 숙소로 돌아와 왕처일에게 약을 달여 먹였다. 다행히 왕처일은 고비를 넘겼지만, 독기가 워낙 강했던 탓에 완전히 회복되지 못하고 여전히 운기조식으로 정양하며 몸을 추슬러야 하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 사이, 자신의 보물 뱀이 처참하게 죽고 피까지 빨린 것을 발견한 양자옹은 이성을 잃고 분노하여 범인을 찾아 나섰다. 그는 뱀의 피 냄새를 추적하여 결국 목역의 숙소까지 쫓아왔고, 그의 곁에는 음흉한 미소를 띤 구양극까지 함께였다.
"감히 내 보물 뱀을 죽이고 그 피까지 탐해? 목숨으로 갚아라!" 양자옹이 광기 어린 눈으로 소리쳤다. 구양극 역시 "왕 도사를 숨겨준 죄까지 더해 모조리 죽여 없애라!"며 살기를 드러냈다.
격전이 벌어졌다. 왕처일은 싸울 수 없는 상태였고, 곽정은 아직 저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형인이 앞으로 나서 양자옹과 구양극을 동시에 상대했다. 그는 자신의 진짜 실력을 숨기고 일부러 백중세를 이루는 것처럼 싸우며 시간을 끌었다. 황용은 옆에서 기지를 발휘해 그들을 교란시키려 애썼다.
혼전 속에서 형인이 두 고수를 상대하느라 잠시 빈틈을 보이자, 양자옹이 곽정에게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곽정이 힘겹게 막아내는 것을 본 목역이 그를 돕기 위해 뛰쳐나왔다. 바로 그 순간, 구양극이 교묘하게 곽정을 노리고 날린 암기(독침)을 목역이 대신 맞고 말았다!
"아버지!" 목염자의 처절한 비명과 함께 목역은 검붉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그는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싸우고 있는 형인의 손을 잡고 힘겹게 말했다.
"젊은이… 내 딸… 염자를… 부디… 부탁… 하네…"
"아버지! 안 돼요! 아버지!" 목염자가 오열했지만, 목역은 이미 숨을 거둔 후였다. 구양극은 이 틈을 타 목염자를 납치하려 했지만, 목역의 죽음에 분노한 형인이 잠시 본 실력을 드러내며 막아섰다. 그의 기세는 이전과 확연히 달라져 있었고, 백년설삼과 뱀 피로 증폭된 내공은 구양극조차 정면으로 감당하기 어려웠다. 구양극은 형인과의 짧은 격돌 끝에 목염자를 포기하는 대신, 그녀의 목에 걸려 있던, 부러진 옥 조각이 달린 붉은 실 목걸이를 낚아채 달아났다. 양자옹 역시 형인의 예상치 못한 강함에 놀라 물러났다.
조왕부로 돌아온 구양극은 완안강에게 목염자 납치 실패를 보고하며, 대신 빼앗아 온 목걸이를 건넸다. 완안강은 부러진 옥 조각을 보자 어딘가 낯익다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그것은 자신의 어머니 포석약이 소중히 간직하던 목걸이의 반쪽과 너무나 흡사했다. 그는 곧장 포석약의 처소로 달려가 그녀에게 목걸이를 내밀었다.
"어머니, 이 옥 조각… 혹시 아시는 것입니까?"
포석약은 부러진 옥 조각을 보는 순간 얼굴이 창백하게 굳어졌다. 그것은 틀림없이 오래전, 첫 정인이었던 양철심과 나눠 가졌던 애틋한 사랑의 징표였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놀랍도록 빨리 차갑게 식어 내렸다. 형인이라는 젊고 강렬한 남자에게 몸과 마음을 모두 빼앗긴 후, 과거의 희미한 그림자 따위는 더 이상 그녀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래, 아주 오래전… 덧없는 인연의 증표였지. 허나 그 인연은 이미 먼지처럼 사라진 지 오래다."
포석약은 무심하고 차갑게 대답하며 옥 조각을 완안강에게 되돌려주었다.
"강아,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네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 것인지, 너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야."
그녀의 목소리에는 과거의 인연에 대한 미련이나 슬픔 대신, 오직 현실에 대한 냉철함과 어딘가를 향한 은밀한 열망만이 담겨 있을 뿐이었다. 완안강은 그런 어머니의 싸늘한 변화를 미처 깨닫지 못한 채,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손안의 옥 조각만을 내려다볼 뿐이었다. 포석약의 마음은 이미 온전히 형인에게 사로잡혀 있었고, 양철심의 죽음이라는 비극조차 그녀의 마음을 더 이상 흔들지 못했다.
한편,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황용은 곽정의 성급하고 고지식한 행동이 결국 목역의 죽음이라는 비극을 초래했다는 생각에 희미한 실망감을 느꼈다. 반면, 위기의 순간에 (겉보기에는) 용감하게 맞서 싸우고, 슬픔에 빠진 목염자를 챙기는 듯한 형인에게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약간의 호감과 함께 더 깊은 흥미와 의문을 동시에 느끼게 되었다.
또 다음화를 위해 쉬어 가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