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잡히는 일은 없고 과거 생각이 계속 떠올라서
최근들어 손에 잡히는 일은 없고 과거 생각이 계속 떠올라서 구차하겠지만 그냥 글을 써봅니다.
저의 과거는 어찌보면 맑은 날씨가 잘 없었습니다. 부정적인 것들이 더 많이 남아있는 그런 날들이었습니다. 25년전 제가 태어난 직후의 가족 사진과 제가 유치원을 다녔을 때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정말이지 이렇게 극과 극이 될 수 있는지 참 의문입니다. 정말 제 자신이 이 집에 가난이라는 악마를 같이 데려온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옛날이나 지금이나 떠오릅니다.
저의 유년시절은 친구들과 노는 추억이 정말 없습니다. 그래서 몇 안 되는 친구들과 모여도 같이 머하면서 놀았는데 하는 이야기가 나오면 저절로 입이 닫아질 수 밖에 없더군요. 저는 다른 친구들과 달리 철이 상당히 일찍 들었습니다. 초등학교를 다니기전에 이미 혼자서 버스를 1시간 동안이나 타고 정확한 정류장에 내려 어머니께서 입원하셨던 병원을 오가기도 하며, 혼자서 컵라면을 끓여먹고, 유치원을 혼자 등원하며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가정에 책임감이 없으신 분이시며 하루가 멀다하고 술만 드시면 집에 오셔서 횡패 부리시고 저를 괴롭히시는 분이셨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시구요. 아래의 이야기는 대부분 어머니와의 생활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자라서 초등학교를 다니며 어른들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죠. 원하지도 않는 학업을 위해 속으로는 싫지만 부모님께서 학원을 등록하시면 억지로 다녔습니다. 솔직히 어린 나이에 다 놀고 싶어하지 공부를 진정으로 원해서 하는 아이들이 몇이나 있겠습니까. 학교를 마치고 운동장이나 아파트에서 노는 친구들이 보면 그저 부러울뿐이었습니다. 한 번은 너무 놀고 싶은 나머지 거짓말을 하고 학원을 안 가고 그 사이에 친구들과 재밌게 놀아봤는데, 부모님이 절 찾아서 끌고 집으로 가시더군요. 그 날 밤은 정말 저에게 지옥이었습니다. 회초리로 온 몸에 피멍이 들 때까지 맞고나서는, 발가벗긴 채로 집밖에 쫓겨났습니다. 당시에 저희집은 좀 못 사는 동네에 있어서 무슨 소리가 나면 앞,뒤,옇집에서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이웃 어르신들이 '애가 왜 저러고 있냐' 면서 오시면 부모님께서는 신경쓰지말고 애 건드리지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저는 아픈 몸을 이끌고 추운데 밖에서 소리내서 새벽까지 울고있으면 이웃분들이 새벽에 시끄러워서 잠 좀 자자고 윽박지르면 그제서야 집에 들어갔었습니다. 회초리로 맞아서 고통스러워서 잠도 못 자고 뜬 눈으로 아침을 맞이하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학교를 가고 학원을 다시 갔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정말 끔찍하네요. 그렇게 밤 늦게 학원에서 돌아와 숙제를 하고 새벽에 잠들고 아침에 다시 일어나 학교를 가는 다람쥐 쳇바퀴 도는듯한 일상이 계속되니 제 건강에 바로 신호가 나타났습니다. 시도때도없이 코피가 흐르는가 하면 수업중에 픽픽 쓰러졌습니다. 그래도 학원을 못 가겠다라고 말을 꺼낼수는 없었습니다. 돌아오는 부모님의 반응이 너무나도 그 어린 아이의 눈에 선했기 때문이죠. '내가 얼마나 고생해서 니를 공부시키는데 그런 말이 나오냐'는 등의 말이 뇌리에 딱딱 꽂힐거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친구를 한 명 사겨도 제 마음대로 사귀지 못 했습니다. 제 자신은 가난한데 가난한 집안의 친구랑 사귀지 말라고 어머님이 그러셨어요. 참 말도 안되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한 번은 가난했던 친구의 집에 저를 데리고 직접 찾아가셔서 '앞으로 우리 애랑 그쪽 애랑 못 어울리게 하세요'라고 하신 적도 있습니다. 친구 사귀는것은 중학생이 되어서는 그 친구에게 직접 말씀 하시더라구요. 정말이지 그 친구에게 미안해서 펑펑 울고 학교에서 제대로 눈도 못 마주쳤습니다.
어느 날은 집이 쑥대밭이 되어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 보증을 섰다가 빚더미를 끌고 오셨던겁니다. 어머니는 담배를 태우기 시작하셨고 가족 간에 그나마 오가던 대화는 완전히 단절되었습니다. 눈칫밥을 이때부터 엄청나게 먹기 시작했습니다. 부모님간에 부부싸움은 두 분이 눈만 마주치면 발생했고, 항상 마지막 화살은 저에게로 향했습니다. '왜 태어났냐', '너 때문에 내가 고생이다', '저 인간이랑 나가서 살아라', '너 죽고 나 죽자'등등 어려서부터 못 들을 말 다 듣고 크면서 속은 이미 다 뒤집어졌었습니다. 정말이지 학교를 가나 학원을 가나 집에 있으나 잠 자는 시간만이 유일한 행복이었습니다. 눈치를 보느라 한 번은 내리막길에서 넘어져서 오른쪽 손목이 부서지고 탈골 되어서 팅팅 부어서 아파죽겠는데도 병원가자는 말도 못 해봤습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병원을 가서 입원했는데 어렸던 저는 병원에 계속 있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집보다 병원이 좋다니...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중학생이 되고, 저희 집이 가난하구나를 입학하면서 깨달았습니다. 같은 반 친구들이 교복 어느 브랜드꺼냐면서 묻는데 저는 대답을 할 수 없었습니다. 동네 교복점에서 맞춘거라 브랜드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3년을 거의 왕따로 지네면서 보내게 됩니다. 중학교부터는 성적도 관리를 해야하니 집에서의 쪼임이 더 강해졌습니다. 정말이지 대화를 나눌 상대가 없다는게 엄청난 고통이었습니다. 혼자서 속으로 삭히고 스트레스는 쌓이기만 하고 혼자서 욕하고 우는게 다였습니다. 2학년이 되어서도 별 다른게 없었습니다. 말이 부반장이었지 그냥 호구였습니다. 공부 조금 하는거 말고는 특별한게 없었거든요. 공부를 하기 위해 학원을 가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습니다. 거기서는 제가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거든요. 그리고 남들보다 조금이나마 공부를 잘 하니까 저절로 친구들이 생기더군요. 그렇다고 학교를 가서는 다시 찌질이가 됐지만요.
3학년이되고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갈등이 생깁니다. 성적이 충분히 되서 외고를 가고 싶지만 집에서의 반대로 포기해야해서, 차선책으로 마에스터고를 가려니 이 마저도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정말 처음으로 반항심이란게 이런거구나 하고 생겼지만 제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집에서 아무런 결정권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고등학교를 가면서 가난은 더 심각해졌습니다. 어머니께서 사기를 당하셔서 그 동안 힘들게 모으신 돈 마저 다 잃게되었습니다. 정말 고등학교를 다니는 3년동안은 끔찍함의 끝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술 마시고 오셔서 집안을 다 부수고, 그 스트레스를 어머니는 저에게 푸시고, 정신적으로는 지옥에 있는건가 싶었습니다. 고2 때는 제가 지각과 조퇴가 잦으니까 징계를 받기 직전까지 가자 담임선생님께서 가정방문을 하러 오셨다가 5분도 안 되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그날 전 어머니로부터 말로 엄청 후드려 맞았습니다. '어떻게 했길레 선생이 집까지 찾아오냐'면서 사람이 들을 수 있는 말인가 하는 그런 말 까지 들었습니다. 몇달 뒤에 수학여행을 제주도로 가는데 저보고 할머니집에 가라고 하는겁니다. 돈이 없어서 자주 못 갔던 탓에 수학여행가서 친구랑 놀지 말고 친가쪽에 있다가 돌아오라고 하셔서 전 괜히 반박했다가 혼날바엔 그냥 조용히 갔다오자라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수학여행 추억도 없고, 졸업사진에서도 제주도에서 찍은 사진에 전 없습니다. 그렇다고 친가쪽에서 반기지도 않았습니다. 밥도 제대로 못 얻어먹고, 친가에서 허드렛일만 하다가 돌아왔는데 그 사이에 친가와 저희 집이 전화로 싸웠는지 좋은 얘기는 듣지도 못 했습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이 집구석에는 불행만 늘어났습니다.
가난을 등에 업고 공부하다가 수능치고 대학을 가면서 학자금 대출을 받으니 가난이 한 층 더 와닿았습니다. 제 이름으로 빚이 생기니까 대학을 가려고하니 상당히 복잡미묘했습니다. 대학을 가니 똥군기를 잡고있고 제가 그걸 못 버티고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갔습니다. 중1때 체육시간에 맞아서 쓰러졌을 때와 같은 증세였습니다. 눈앞이 깜깜하고 숨이 너무 차고 정신을 잃고. 집에 전화가 가고 무사히 기숙사에 와서 자고 다음 날 일어나서 학교를 가니 전 놀림걸이가 된거였습니다. 잘못은 다른 사람이하고 사회적으로 웃음거리가 되자 정말 복잡한 감정이 생기는겁니다. 내가 이런 사람들이 있는 대학을 졸업하면 저들과 동급이 되는건데 이걸 계속 다녀야하나 마나 생각이 드는겁니다. 그래도 나는 죄인도 아닌데 최대한 남들 시선 피하면서 수업을 듣다가 체육대회에서 한 번 더 공개적으로 놀림감이 되자 1학년 1학기를 학사경고 받고 마무리합니다. 이 사실을 집에 말하지도 못 하고 따로 빚을 만들어서 2학기를 신청하지만 전 다시 한번 학사경고를 받았습니다. 끝 없는 연극은 없듯이 결국 학사경고 2회분을 집에 들켰고 지금까지도 전 사실을 집에 털어놓지 못 했습니다.
결국 몰래 자퇴를 하고 어머니는 알게 되셨죠. 그리고 전 어떻게든 가난을 극복해보려고 피시방 야간 알바, 중국집 배달 알바, 전단지 알바, 막노동 등 안 가리고 이 일, 저 일 다 해보았지만 결국 가난을 이기지 못 했습니다. 군대를 갔다오고2년동안 건축, 물류 관련 일을 해도 늘어나는 것은 빚 뿐이네요. 나라에서 지원해주는 지원금을 받으면서 취직을 위해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이번 달 들어서 손에 샤프 조차 잡히질 않네요. 분명 저번 달 까지만 해도 악을 쓰고 공부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제 자신에 대한 혐오와 불만 그리고 짜증이 뒤섞여서 도망가고 싶고 떠나고 싶고 사라지고 싶은 부정적인 마음만 가득하네요.
문제는 제 자신이며 스스로인데... 바뀌는게 참 어렵네요. 20대에 누군가에게 사랑 받아보고 싶기도 하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기도 하네요. 하지만 저를 끊임없이 따라 다니는 이 가난이란 녀석 때문에 사랑은 너무나도 과분하고 사치스러운 감정 같습니다.
생가나는 대로 쓰다보니 글이 기승전결도 없고 막무가내네요.
귀한 시간 내서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의 과거는 어찌보면 맑은 날씨가 잘 없었습니다. 부정적인 것들이 더 많이 남아있는 그런 날들이었습니다. 25년전 제가 태어난 직후의 가족 사진과 제가 유치원을 다녔을 때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정말이지 이렇게 극과 극이 될 수 있는지 참 의문입니다. 정말 제 자신이 이 집에 가난이라는 악마를 같이 데려온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옛날이나 지금이나 떠오릅니다.
저의 유년시절은 친구들과 노는 추억이 정말 없습니다. 그래서 몇 안 되는 친구들과 모여도 같이 머하면서 놀았는데 하는 이야기가 나오면 저절로 입이 닫아질 수 밖에 없더군요. 저는 다른 친구들과 달리 철이 상당히 일찍 들었습니다. 초등학교를 다니기전에 이미 혼자서 버스를 1시간 동안이나 타고 정확한 정류장에 내려 어머니께서 입원하셨던 병원을 오가기도 하며, 혼자서 컵라면을 끓여먹고, 유치원을 혼자 등원하며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가정에 책임감이 없으신 분이시며 하루가 멀다하고 술만 드시면 집에 오셔서 횡패 부리시고 저를 괴롭히시는 분이셨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시구요. 아래의 이야기는 대부분 어머니와의 생활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자라서 초등학교를 다니며 어른들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죠. 원하지도 않는 학업을 위해 속으로는 싫지만 부모님께서 학원을 등록하시면 억지로 다녔습니다. 솔직히 어린 나이에 다 놀고 싶어하지 공부를 진정으로 원해서 하는 아이들이 몇이나 있겠습니까. 학교를 마치고 운동장이나 아파트에서 노는 친구들이 보면 그저 부러울뿐이었습니다. 한 번은 너무 놀고 싶은 나머지 거짓말을 하고 학원을 안 가고 그 사이에 친구들과 재밌게 놀아봤는데, 부모님이 절 찾아서 끌고 집으로 가시더군요. 그 날 밤은 정말 저에게 지옥이었습니다. 회초리로 온 몸에 피멍이 들 때까지 맞고나서는, 발가벗긴 채로 집밖에 쫓겨났습니다. 당시에 저희집은 좀 못 사는 동네에 있어서 무슨 소리가 나면 앞,뒤,옇집에서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이웃 어르신들이 '애가 왜 저러고 있냐' 면서 오시면 부모님께서는 신경쓰지말고 애 건드리지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저는 아픈 몸을 이끌고 추운데 밖에서 소리내서 새벽까지 울고있으면 이웃분들이 새벽에 시끄러워서 잠 좀 자자고 윽박지르면 그제서야 집에 들어갔었습니다. 회초리로 맞아서 고통스러워서 잠도 못 자고 뜬 눈으로 아침을 맞이하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학교를 가고 학원을 다시 갔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정말 끔찍하네요. 그렇게 밤 늦게 학원에서 돌아와 숙제를 하고 새벽에 잠들고 아침에 다시 일어나 학교를 가는 다람쥐 쳇바퀴 도는듯한 일상이 계속되니 제 건강에 바로 신호가 나타났습니다. 시도때도없이 코피가 흐르는가 하면 수업중에 픽픽 쓰러졌습니다. 그래도 학원을 못 가겠다라고 말을 꺼낼수는 없었습니다. 돌아오는 부모님의 반응이 너무나도 그 어린 아이의 눈에 선했기 때문이죠. '내가 얼마나 고생해서 니를 공부시키는데 그런 말이 나오냐'는 등의 말이 뇌리에 딱딱 꽂힐거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친구를 한 명 사겨도 제 마음대로 사귀지 못 했습니다. 제 자신은 가난한데 가난한 집안의 친구랑 사귀지 말라고 어머님이 그러셨어요. 참 말도 안되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한 번은 가난했던 친구의 집에 저를 데리고 직접 찾아가셔서 '앞으로 우리 애랑 그쪽 애랑 못 어울리게 하세요'라고 하신 적도 있습니다. 친구 사귀는것은 중학생이 되어서는 그 친구에게 직접 말씀 하시더라구요. 정말이지 그 친구에게 미안해서 펑펑 울고 학교에서 제대로 눈도 못 마주쳤습니다.
어느 날은 집이 쑥대밭이 되어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 보증을 섰다가 빚더미를 끌고 오셨던겁니다. 어머니는 담배를 태우기 시작하셨고 가족 간에 그나마 오가던 대화는 완전히 단절되었습니다. 눈칫밥을 이때부터 엄청나게 먹기 시작했습니다. 부모님간에 부부싸움은 두 분이 눈만 마주치면 발생했고, 항상 마지막 화살은 저에게로 향했습니다. '왜 태어났냐', '너 때문에 내가 고생이다', '저 인간이랑 나가서 살아라', '너 죽고 나 죽자'등등 어려서부터 못 들을 말 다 듣고 크면서 속은 이미 다 뒤집어졌었습니다. 정말이지 학교를 가나 학원을 가나 집에 있으나 잠 자는 시간만이 유일한 행복이었습니다. 눈치를 보느라 한 번은 내리막길에서 넘어져서 오른쪽 손목이 부서지고 탈골 되어서 팅팅 부어서 아파죽겠는데도 병원가자는 말도 못 해봤습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병원을 가서 입원했는데 어렸던 저는 병원에 계속 있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집보다 병원이 좋다니...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중학생이 되고, 저희 집이 가난하구나를 입학하면서 깨달았습니다. 같은 반 친구들이 교복 어느 브랜드꺼냐면서 묻는데 저는 대답을 할 수 없었습니다. 동네 교복점에서 맞춘거라 브랜드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3년을 거의 왕따로 지네면서 보내게 됩니다. 중학교부터는 성적도 관리를 해야하니 집에서의 쪼임이 더 강해졌습니다. 정말이지 대화를 나눌 상대가 없다는게 엄청난 고통이었습니다. 혼자서 속으로 삭히고 스트레스는 쌓이기만 하고 혼자서 욕하고 우는게 다였습니다. 2학년이 되어서도 별 다른게 없었습니다. 말이 부반장이었지 그냥 호구였습니다. 공부 조금 하는거 말고는 특별한게 없었거든요. 공부를 하기 위해 학원을 가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습니다. 거기서는 제가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거든요. 그리고 남들보다 조금이나마 공부를 잘 하니까 저절로 친구들이 생기더군요. 그렇다고 학교를 가서는 다시 찌질이가 됐지만요.
3학년이되고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갈등이 생깁니다. 성적이 충분히 되서 외고를 가고 싶지만 집에서의 반대로 포기해야해서, 차선책으로 마에스터고를 가려니 이 마저도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정말 처음으로 반항심이란게 이런거구나 하고 생겼지만 제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집에서 아무런 결정권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고등학교를 가면서 가난은 더 심각해졌습니다. 어머니께서 사기를 당하셔서 그 동안 힘들게 모으신 돈 마저 다 잃게되었습니다. 정말 고등학교를 다니는 3년동안은 끔찍함의 끝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술 마시고 오셔서 집안을 다 부수고, 그 스트레스를 어머니는 저에게 푸시고, 정신적으로는 지옥에 있는건가 싶었습니다. 고2 때는 제가 지각과 조퇴가 잦으니까 징계를 받기 직전까지 가자 담임선생님께서 가정방문을 하러 오셨다가 5분도 안 되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그날 전 어머니로부터 말로 엄청 후드려 맞았습니다. '어떻게 했길레 선생이 집까지 찾아오냐'면서 사람이 들을 수 있는 말인가 하는 그런 말 까지 들었습니다. 몇달 뒤에 수학여행을 제주도로 가는데 저보고 할머니집에 가라고 하는겁니다. 돈이 없어서 자주 못 갔던 탓에 수학여행가서 친구랑 놀지 말고 친가쪽에 있다가 돌아오라고 하셔서 전 괜히 반박했다가 혼날바엔 그냥 조용히 갔다오자라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수학여행 추억도 없고, 졸업사진에서도 제주도에서 찍은 사진에 전 없습니다. 그렇다고 친가쪽에서 반기지도 않았습니다. 밥도 제대로 못 얻어먹고, 친가에서 허드렛일만 하다가 돌아왔는데 그 사이에 친가와 저희 집이 전화로 싸웠는지 좋은 얘기는 듣지도 못 했습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이 집구석에는 불행만 늘어났습니다.
가난을 등에 업고 공부하다가 수능치고 대학을 가면서 학자금 대출을 받으니 가난이 한 층 더 와닿았습니다. 제 이름으로 빚이 생기니까 대학을 가려고하니 상당히 복잡미묘했습니다. 대학을 가니 똥군기를 잡고있고 제가 그걸 못 버티고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갔습니다. 중1때 체육시간에 맞아서 쓰러졌을 때와 같은 증세였습니다. 눈앞이 깜깜하고 숨이 너무 차고 정신을 잃고. 집에 전화가 가고 무사히 기숙사에 와서 자고 다음 날 일어나서 학교를 가니 전 놀림걸이가 된거였습니다. 잘못은 다른 사람이하고 사회적으로 웃음거리가 되자 정말 복잡한 감정이 생기는겁니다. 내가 이런 사람들이 있는 대학을 졸업하면 저들과 동급이 되는건데 이걸 계속 다녀야하나 마나 생각이 드는겁니다. 그래도 나는 죄인도 아닌데 최대한 남들 시선 피하면서 수업을 듣다가 체육대회에서 한 번 더 공개적으로 놀림감이 되자 1학년 1학기를 학사경고 받고 마무리합니다. 이 사실을 집에 말하지도 못 하고 따로 빚을 만들어서 2학기를 신청하지만 전 다시 한번 학사경고를 받았습니다. 끝 없는 연극은 없듯이 결국 학사경고 2회분을 집에 들켰고 지금까지도 전 사실을 집에 털어놓지 못 했습니다.
결국 몰래 자퇴를 하고 어머니는 알게 되셨죠. 그리고 전 어떻게든 가난을 극복해보려고 피시방 야간 알바, 중국집 배달 알바, 전단지 알바, 막노동 등 안 가리고 이 일, 저 일 다 해보았지만 결국 가난을 이기지 못 했습니다. 군대를 갔다오고2년동안 건축, 물류 관련 일을 해도 늘어나는 것은 빚 뿐이네요. 나라에서 지원해주는 지원금을 받으면서 취직을 위해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이번 달 들어서 손에 샤프 조차 잡히질 않네요. 분명 저번 달 까지만 해도 악을 쓰고 공부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제 자신에 대한 혐오와 불만 그리고 짜증이 뒤섞여서 도망가고 싶고 떠나고 싶고 사라지고 싶은 부정적인 마음만 가득하네요.
문제는 제 자신이며 스스로인데... 바뀌는게 참 어렵네요. 20대에 누군가에게 사랑 받아보고 싶기도 하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기도 하네요. 하지만 저를 끊임없이 따라 다니는 이 가난이란 녀석 때문에 사랑은 너무나도 과분하고 사치스러운 감정 같습니다.
생가나는 대로 쓰다보니 글이 기승전결도 없고 막무가내네요.
귀한 시간 내서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