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x) 그냥저냥 푸념글 입니다.
글 쓰기에 앞서 20대 초반이고 낮술 때리고 쓰고 말할 때가 없어서 푸념하는 글입니다.
한 살부터 다섯 살까지 어머니와 아버지의 잦은 다툼으로 외할머니집과 본가로 왔다갔다 많이 하고 살았습니다. 물론 아버지의 도박 및 알콜성 폭행으로 어머니는 늘 폭력을 당하던 쪽이었고 아버지만 늘 폭력 행사를 했습니다. 다섯 살때는 유치원에서 친구와 말다툼을 하고 집에 돌아와서 아버지에게 커튼봉으로 맞고 골절이 되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폭력과 폭언에 시달리며 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 입학한지 얼마되지않아 아버지의 사업으로 외할머니댁에서 어머니 아버지 저 동생이 살기 시작했습니다. 지방 쪽 학교여서 학교 인원이 없었지만 그래도 그곳에서도 힘든 학생시절을 보냈습니다. 아버지의 폭력과 폭언은 날이 갈 수록 심해졌고 어머니는 이혼을 늘 생각하고 있었지만 적어도 자식이 독립할 때까지는 절대로 하지않고 자신이 참아야한다고 살았습니다.
저의 남동생은 체벌을 당하진 않았지만 이러한 분위속에서 계속해서 커왔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사업을 그만두고 또 학교를 옮긴다고 말하자 당시 사춘기였던 저는 그냥 학교는 여기 졸업하고 가면 안되냐는 말 한마디 했다가 미친듯이 맞고 ‘아버지한테 개기냐’, ‘나이 좀 찼다고 기어오르냐’
‘너같은게 왜 나와서 나를 고생하냐’ 등 상처 받는 소리를 많이 하셨죠
그래도 저는 참았습니다 신고도 못 하고. 왜냐구요? 그 어린나이에 기둥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살아와서 저는 모든 집이 다 이런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학교를 옮긴 후 중학교에 입학할 때 쯤 당시 수영부였던 저는 학교 선배의 폭력으로 왼쪽 어깨가 골절되어 더 이상 선수 생활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병원을 갔다가 그 얘기를 듣고 집에 돌아온 후 어머니가 없는 사이에 기둥이 무너졌다고 필요없다고 깁스하고 있던 저를
의식을 잃기 직전 까지 폭행한 후 입원 시켰습니다. 그러고 난 후 저는 우울증 및 불안장애 등 각종 정신병을 얻게 되었지만 고생하는 어머니앞에선 전혀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학교를 가도 수영부라 매일 연습하러간다고 친구가 없었고 심지어 친했던 친구들 두 명마저도 우울증인 저를 기피하기 시작했습니다.
도저히 살 이유가 없다고 느껴지니 자살을 결심하고 20층에서 떨어질 계획을 하고 각종 유서를 쓰고 옥상으로 올라갔습니다. 근데 참 어머니의 얼굴이 떨어지기 직전까지 잊혀지지도 않더군요. 그래도 살아가는게 적어도 죽는거보다 더 힘들 것이라고 열 네살의 저는 생각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좋아했던 여사친에게 전화 한 통을 했습니다. 그 친구는 ‘친구도 없는데 왜 죽냐’,’장례식장에 적어도 친구들이라도 있어야하지 않냐’ 이 얘기를 들으니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이 친구의 말 몇마디로 저는 우울증도 극복했고 자살도 잘 참아서 현재까지 잘 살아가고 있네요.
현재는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취업하여 공기업에 재직중입니다.
술먹고 과거 생각이나서 여기에 한번 푸념을 해보았습니다.
긴 글 읽어주신 분들 대단히 감사합니다.
한 살부터 다섯 살까지 어머니와 아버지의 잦은 다툼으로 외할머니집과 본가로 왔다갔다 많이 하고 살았습니다. 물론 아버지의 도박 및 알콜성 폭행으로 어머니는 늘 폭력을 당하던 쪽이었고 아버지만 늘 폭력 행사를 했습니다. 다섯 살때는 유치원에서 친구와 말다툼을 하고 집에 돌아와서 아버지에게 커튼봉으로 맞고 골절이 되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폭력과 폭언에 시달리며 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 입학한지 얼마되지않아 아버지의 사업으로 외할머니댁에서 어머니 아버지 저 동생이 살기 시작했습니다. 지방 쪽 학교여서 학교 인원이 없었지만 그래도 그곳에서도 힘든 학생시절을 보냈습니다. 아버지의 폭력과 폭언은 날이 갈 수록 심해졌고 어머니는 이혼을 늘 생각하고 있었지만 적어도 자식이 독립할 때까지는 절대로 하지않고 자신이 참아야한다고 살았습니다.
저의 남동생은 체벌을 당하진 않았지만 이러한 분위속에서 계속해서 커왔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사업을 그만두고 또 학교를 옮긴다고 말하자 당시 사춘기였던 저는 그냥 학교는 여기 졸업하고 가면 안되냐는 말 한마디 했다가 미친듯이 맞고 ‘아버지한테 개기냐’, ‘나이 좀 찼다고 기어오르냐’
‘너같은게 왜 나와서 나를 고생하냐’ 등 상처 받는 소리를 많이 하셨죠
그래도 저는 참았습니다 신고도 못 하고. 왜냐구요? 그 어린나이에 기둥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살아와서 저는 모든 집이 다 이런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학교를 옮긴 후 중학교에 입학할 때 쯤 당시 수영부였던 저는 학교 선배의 폭력으로 왼쪽 어깨가 골절되어 더 이상 선수 생활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병원을 갔다가 그 얘기를 듣고 집에 돌아온 후 어머니가 없는 사이에 기둥이 무너졌다고 필요없다고 깁스하고 있던 저를
의식을 잃기 직전 까지 폭행한 후 입원 시켰습니다. 그러고 난 후 저는 우울증 및 불안장애 등 각종 정신병을 얻게 되었지만 고생하는 어머니앞에선 전혀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학교를 가도 수영부라 매일 연습하러간다고 친구가 없었고 심지어 친했던 친구들 두 명마저도 우울증인 저를 기피하기 시작했습니다.
도저히 살 이유가 없다고 느껴지니 자살을 결심하고 20층에서 떨어질 계획을 하고 각종 유서를 쓰고 옥상으로 올라갔습니다. 근데 참 어머니의 얼굴이 떨어지기 직전까지 잊혀지지도 않더군요. 그래도 살아가는게 적어도 죽는거보다 더 힘들 것이라고 열 네살의 저는 생각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좋아했던 여사친에게 전화 한 통을 했습니다. 그 친구는 ‘친구도 없는데 왜 죽냐’,’장례식장에 적어도 친구들이라도 있어야하지 않냐’ 이 얘기를 들으니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이 친구의 말 몇마디로 저는 우울증도 극복했고 자살도 잘 참아서 현재까지 잘 살아가고 있네요.
현재는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취업하여 공기업에 재직중입니다.
술먹고 과거 생각이나서 여기에 한번 푸념을 해보았습니다.
긴 글 읽어주신 분들 대단히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