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업 취업했습니다 그런데 너무 슬프네요
전문대나와서 반도체 중견기업 안전관리자로 취업했고 다음주부터 출근입니다.
오늘 아버지한테 말씀드린 순간 돌아오는 첫마디가 "삼성이나 현대에서는 오라 안하드나?"
심장을 후벼팠습니다. 설거지하면서 그 말 들었는데 눈물이 쏟아지더군요.
남아선호사상이 심한 옜날사람인 아버지는 제 위로 3살6살 차이나는 누나한테도 항상 학업, 취업에 아쉬워 하셨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고학년일때, 큰누나는 공부 빡센걸로 알아주는 사립고교에서 이과 전교 46등을 했습니다.
그당시 어렸던 저는 그게 얼마만큼의 성적인지 전혀 몰랐지만 아버지는 그런 누나를 보고 겨우 전교 46등밖에 못하냐고, 누나가 집에 귀가하면 "46등! 밥먹었나" 라고 불러대곤 했습니다.
그리고 지거국 공대를 들어간 누나는 전액 장학은 아니더라도 틈틈히 용돈삼을만한 장학금을 타오기도 했고 외모가 이뻐서 학교 홍보대사를 맡기도 했지만 아버지는 그거에 만족못하고 아들인 저한테는 항상 인서울을 해야한다 말했고, 누나가 중소기업에 취업을 했을 때도 겨우 그거밖에 못가냐고 아쉬워했습니다.
아버지가 친구들에 비해 결혼을 늦게해서 친구들 자녀들은 이미 대학, 취업을 다 한상태이고, 저는 그중에서도 막내라 항상 비교의 대상이 되곤 했습니다.
공부랑은 거리가 멀었던 아버지는 무조건 인서울 대학이 좋은줄만 알고, 기업은 무조건 삼성, 현대, LG같은 대기업 계열사들만 좋은 줄아는, 흔히 외관에 집착하는 사람입니다.
친구 자녀가 전문대에 갔다고하니 돌아오는 차에서 어머니한테 전문대갔다고 비웃었다는군요...
어렸을 땐 몰랐지만 점점 커가면서 큰누나가 얼마나 잘했던건지 실감하게 됐습니다.
중학교부터 공부랑은 크게 친하지 않았던 저는 뭘해야할지, 뭘 하고싶은지도 모른채 그저 주변 친구들 따라 근처 인문계 고등학교 이과로 갔고... 내신은 5 후반정도로 처참했습니다.
딱히 성적을 직접적으로 묻지 않았던 부모님이기에 그저그런대로 살아왔지만 그런 중에도 아버지는 항상
"니가 OO가문을 일으켜 세워야한다"
"최소 OO대학은 가야지"
"아들은 미래에 좋은데 취업해서 아부지 차 한대 뽑아줘야지"
"아들이 아부지 노후에 모시고 살거다이가"
이런식으로 늘 부담을 주었고 저는 도저히 제 공부머리로는 불가능한 현실이란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어릴적부터 배드민턴 선수로 상도 받아보고 합기도도 오래했어서 운동을 살려 우선 체육대학에 진학해보고자 고2 여름방학때부터 체대입시학원에 다닙니다.
처음에는 어머니가 몸다치는것 때문에 반대를 많이 하셨지만, 우선 좋은 대학이라도 가주고 싶어서 설득끝에 해봤습니다만... 몸이 영 안따라주더라고요.
정말 남들보다 배로 노력하고 공부했는데도 결국 원했던 대학에 낙방하게 되고 수능 끝나고 훈련을 매일 하러 가야하기때문에 생기부에 무단지각이 많이 끄였습니다.
담임샘과 상담해봤는데 학교에선 원칙적으로 빼줄수 없어 출석만 하고 가면 무단지각처리 해주겠다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당시엔 그게 크게 중요하단 생각을 안해서 그렇게 살았지만 이후 대학에 떨어진 뒤 부랴부랴 전문대라도 급하게 알아봐서 학교 기숙사에 입사하는 날, 아버지가 캠퍼스가 너무 작다면서 아쉬워하는 눈치가 눈에 보이더라고요.
정말 죽고싶었습니다.
그래도 거기서 꾸역꾸역 공부 미친듯이 해서 살아남고자 했습니다. 그결과 24살 지금 나이에 산업기사3개, 안전관리자2개, 민간자격증1개를 취득했고 토익도 600점정도 가지고 있습니다.
영어는 계속 공부하는데 도무지 오르지가 않네요...
여튼, 군대에서도 남들 여가시간에 폰보면서 놀때 매일같이 독서실에가 공부했고, 휴가를 나와서도 독서실에가서 공부했습니다.
전역한날에는 그 당일만 놀고 다음날부터 하루 10시간 이상 독서실에 틀어박혀 공부만 했습니다. 여자는 쳐다보지도 않고 친구들이랑 최소한의 만남만 가진 채 스펙업에 열중했습니다.
그리고 하반기 채용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는데... 학점도 높고 자격증도 다양한데 자소서를 못써서인지, 학과가 별로여선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아무래도 출결이 가장 크게 걸리는것 같습니다.
알고보니 초대졸 생산직 뽑을땐 출결이 매우 중요하다 하더라고요? 그래서 작년 하반기 25곳 정도 대기업을 넣어봤는데 죄다 탈락했습니다. ㅋㅋㅋㅋ 웃기죠 저도 웃깁니다.
여튼 그래서 학과나 바꿔볼까 하고 다른 학교 알아보던 중, 학교 컨설턴트의 추천으로 이번 안전관리자에 취업이 되서 다녀보려고 하는데... 앞서 말했듯이 심장을 후벼파는 한마디가 들어오니깐 정말 죽고싶더라고요.
어릴떄부터 온갖 비교와 욕심으로 부담을 줘서 불행했는데, 아버지 만족한번 시켜보겠다고 개같이 공부했는데, 아버지 욕심때문에 출결도 안좋아져서 취업도 안되서 최선의 선택을 한건데, 벌써부터 남들한테 말하기 쪽팔려 할거 뻔하니 너무 슬프더라고요.
취업이 확정된 이순간에도 전 독서실로 와서 토익공부를 하고있습니다, 그런데 눈물이 자꾸나서 집중이 안되네요.
물론 글만 봐서 알 수 없는 아버지의 좋은 면모도 있습니다, 노동 하시면서 3자녀를 먹여살린 헌신, 그러던 중 얻게된 신체 장애, 매일 새벽 출근해서 추울때 추운데서, 더울때 더운데서 일하는 아버지의 노고는 존경받아야 마땅합니다.
또한 전적으로 아버지 잘못은 아닙니다, 다 핑계죠. 체대를 가려 한것도 제 선택, 출결이 안좋아진것도 제 선택, 학교 학과를 잘못간것도 제 선택, 그런데 성인이 되고나서부터 주변친구들도 놀랄정도로 개과천선해서 개처럼 열심히 공부했는데 돌아오는 한마디 "삼성이나 현대에서는 오라 안하드나?" 너무 슬프네요.
이번주 일요일 토익시험이나 좀 잘쳤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아버지한테 말씀드린 순간 돌아오는 첫마디가 "삼성이나 현대에서는 오라 안하드나?"
심장을 후벼팠습니다. 설거지하면서 그 말 들었는데 눈물이 쏟아지더군요.
남아선호사상이 심한 옜날사람인 아버지는 제 위로 3살6살 차이나는 누나한테도 항상 학업, 취업에 아쉬워 하셨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고학년일때, 큰누나는 공부 빡센걸로 알아주는 사립고교에서 이과 전교 46등을 했습니다.
그당시 어렸던 저는 그게 얼마만큼의 성적인지 전혀 몰랐지만 아버지는 그런 누나를 보고 겨우 전교 46등밖에 못하냐고, 누나가 집에 귀가하면 "46등! 밥먹었나" 라고 불러대곤 했습니다.
그리고 지거국 공대를 들어간 누나는 전액 장학은 아니더라도 틈틈히 용돈삼을만한 장학금을 타오기도 했고 외모가 이뻐서 학교 홍보대사를 맡기도 했지만 아버지는 그거에 만족못하고 아들인 저한테는 항상 인서울을 해야한다 말했고, 누나가 중소기업에 취업을 했을 때도 겨우 그거밖에 못가냐고 아쉬워했습니다.
아버지가 친구들에 비해 결혼을 늦게해서 친구들 자녀들은 이미 대학, 취업을 다 한상태이고, 저는 그중에서도 막내라 항상 비교의 대상이 되곤 했습니다.
공부랑은 거리가 멀었던 아버지는 무조건 인서울 대학이 좋은줄만 알고, 기업은 무조건 삼성, 현대, LG같은 대기업 계열사들만 좋은 줄아는, 흔히 외관에 집착하는 사람입니다.
친구 자녀가 전문대에 갔다고하니 돌아오는 차에서 어머니한테 전문대갔다고 비웃었다는군요...
어렸을 땐 몰랐지만 점점 커가면서 큰누나가 얼마나 잘했던건지 실감하게 됐습니다.
중학교부터 공부랑은 크게 친하지 않았던 저는 뭘해야할지, 뭘 하고싶은지도 모른채 그저 주변 친구들 따라 근처 인문계 고등학교 이과로 갔고... 내신은 5 후반정도로 처참했습니다.
딱히 성적을 직접적으로 묻지 않았던 부모님이기에 그저그런대로 살아왔지만 그런 중에도 아버지는 항상
"니가 OO가문을 일으켜 세워야한다"
"최소 OO대학은 가야지"
"아들은 미래에 좋은데 취업해서 아부지 차 한대 뽑아줘야지"
"아들이 아부지 노후에 모시고 살거다이가"
이런식으로 늘 부담을 주었고 저는 도저히 제 공부머리로는 불가능한 현실이란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어릴적부터 배드민턴 선수로 상도 받아보고 합기도도 오래했어서 운동을 살려 우선 체육대학에 진학해보고자 고2 여름방학때부터 체대입시학원에 다닙니다.
처음에는 어머니가 몸다치는것 때문에 반대를 많이 하셨지만, 우선 좋은 대학이라도 가주고 싶어서 설득끝에 해봤습니다만... 몸이 영 안따라주더라고요.
정말 남들보다 배로 노력하고 공부했는데도 결국 원했던 대학에 낙방하게 되고 수능 끝나고 훈련을 매일 하러 가야하기때문에 생기부에 무단지각이 많이 끄였습니다.
담임샘과 상담해봤는데 학교에선 원칙적으로 빼줄수 없어 출석만 하고 가면 무단지각처리 해주겠다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당시엔 그게 크게 중요하단 생각을 안해서 그렇게 살았지만 이후 대학에 떨어진 뒤 부랴부랴 전문대라도 급하게 알아봐서 학교 기숙사에 입사하는 날, 아버지가 캠퍼스가 너무 작다면서 아쉬워하는 눈치가 눈에 보이더라고요.
정말 죽고싶었습니다.
그래도 거기서 꾸역꾸역 공부 미친듯이 해서 살아남고자 했습니다. 그결과 24살 지금 나이에 산업기사3개, 안전관리자2개, 민간자격증1개를 취득했고 토익도 600점정도 가지고 있습니다.
영어는 계속 공부하는데 도무지 오르지가 않네요...
여튼, 군대에서도 남들 여가시간에 폰보면서 놀때 매일같이 독서실에가 공부했고, 휴가를 나와서도 독서실에가서 공부했습니다.
전역한날에는 그 당일만 놀고 다음날부터 하루 10시간 이상 독서실에 틀어박혀 공부만 했습니다. 여자는 쳐다보지도 않고 친구들이랑 최소한의 만남만 가진 채 스펙업에 열중했습니다.
그리고 하반기 채용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는데... 학점도 높고 자격증도 다양한데 자소서를 못써서인지, 학과가 별로여선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아무래도 출결이 가장 크게 걸리는것 같습니다.
알고보니 초대졸 생산직 뽑을땐 출결이 매우 중요하다 하더라고요? 그래서 작년 하반기 25곳 정도 대기업을 넣어봤는데 죄다 탈락했습니다. ㅋㅋㅋㅋ 웃기죠 저도 웃깁니다.
여튼 그래서 학과나 바꿔볼까 하고 다른 학교 알아보던 중, 학교 컨설턴트의 추천으로 이번 안전관리자에 취업이 되서 다녀보려고 하는데... 앞서 말했듯이 심장을 후벼파는 한마디가 들어오니깐 정말 죽고싶더라고요.
어릴떄부터 온갖 비교와 욕심으로 부담을 줘서 불행했는데, 아버지 만족한번 시켜보겠다고 개같이 공부했는데, 아버지 욕심때문에 출결도 안좋아져서 취업도 안되서 최선의 선택을 한건데, 벌써부터 남들한테 말하기 쪽팔려 할거 뻔하니 너무 슬프더라고요.
취업이 확정된 이순간에도 전 독서실로 와서 토익공부를 하고있습니다, 그런데 눈물이 자꾸나서 집중이 안되네요.
물론 글만 봐서 알 수 없는 아버지의 좋은 면모도 있습니다, 노동 하시면서 3자녀를 먹여살린 헌신, 그러던 중 얻게된 신체 장애, 매일 새벽 출근해서 추울때 추운데서, 더울때 더운데서 일하는 아버지의 노고는 존경받아야 마땅합니다.
또한 전적으로 아버지 잘못은 아닙니다, 다 핑계죠. 체대를 가려 한것도 제 선택, 출결이 안좋아진것도 제 선택, 학교 학과를 잘못간것도 제 선택, 그런데 성인이 되고나서부터 주변친구들도 놀랄정도로 개과천선해서 개처럼 열심히 공부했는데 돌아오는 한마디 "삼성이나 현대에서는 오라 안하드나?" 너무 슬프네요.
이번주 일요일 토익시험이나 좀 잘쳤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