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타문학1. 친척누나 편
(본 글은 필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각색되었음을 밝힙니다.)
시골 아이들은 드세다.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도 괴물이 되어야했고, 그런 괴물이 되기에 난 선택받은 환경이었다. 서른을 바라보고 있는 필자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때에 벌써 지금의 키와 몸무게에 도달해있었다. 지금도 덩치가 크다는 이야길 듣는데, 무려 초등학생이 이런 피지컬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잠깐 집안 이야기를 하자면 우리 집은 지금도 그렇지만, 그땐 더 찢어지게 가난했다. 부모님은 변변찮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겨울엔 붕어빵 장사를 하셨고, 여름엔 뭘하고 돌아다니는지 모르게 집에 잘 안 들어오시곤 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나와 내 동생은 시골에 계신 조부모님 댁에 맡겨졌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었다. 혹자는 바람이 자신의 팔할을 키웠다지만, 나는 할머니가 나의 팔할을 키워내셨다.
시골동네가 다 그렇듯, 그나마 있는 또래라곤 내 6살 터울의 동생이 유일했다. 초등학교는 걸어서 1시간 반을 가야하는 곳이었는데, 돌이켜보면 어떻게 그 거리를 매일 걸어다녔나 싶다. 그래도 가야만 했고, 가는 게 즐거웠었다. 유일하게 주변 몇몇 동네에서 또래 아이들이 모이는 유일한 공간이 학교였으니까. 그래봤자 전교생 15명 정도의 시골 분교였다. 잘 기억나는 건 많이 없지만 그래도 남부럽지 않게 즐거운 학창시절이었었다. 행복은 비교하지 않는 데서 나오는거니까.
여름과 겨울에 방학을 하면 난 다시 혼자였다. 6살 터울의 동생은 같이 놀기에 너무 어리고 유치했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동생은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했었으니까. 내가 중학교를 들어가고 나서야 동생은 초등학교에 입학했었으니까. 여름방학의 해는 남들보다 길었고, 겨울방학의 달은 누구보다 오래 빛났다.
잠깐 또 옆집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내게는 7촌? 8촌?정도의 촌수를 가진 할아버지가 혼자 살고 계셨다. 그 집 할머니는 병으로 일찍 돌아가시고 할아버지 혼자 정정하게 살아계신 집이었다. 시골인심 덕에 우리 조부모님은 옆집 할아버지를 잘 챙기셨고, 주로 나를 시켜 옆집 할아버지께 식사하러 오시라고 하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이 시작한 지 얼마 안됐을 때였다. 여느 날처럼 옆집 할아버지 댁에 식사하러 오시라고 말씀드리러 갔는데, 그 집 마당에 못보던 차가 두 대 서있었고, 왁자지껄했다. 그 할아버지의 자식들, 나에게는 고모, 고모부라는 사람들이었다. 옆집 할아버지는 오늘은 자식들이랑 먹겠다며 나를 돌려보내셨고, 나는 그 사이에 또래 여자를 보게 됐다. 분명 나보다 나이는 많은 거 같은데, 나보다는 작은 여자애였다. 마르지도 통통하지도 않은 보통의 체형에 긴 머리를 묶어놓은 여자애. 학교에서 보던 또래 여자아이들과 달리 하얀 여자애. 그 여자의 첫 인상이었다.
다음 날엔 두 대의 차가 사라져있었고, 옆집 할아버지께 식사하러 오시라고 전한 뒤 먼저 집에 돌아오자, 옆집 할아버지와 그 여자애가 같이 우리 집에 왔다. 여자애는 종일 짜증을 냈다. 더워서인지, 시골반찬이 입에 안 맞아서였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던 중 그 짜증이 낯을 가리고 있던 내게 뻗쳤다.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짜증에 대해 옆집 할아버지가 크게 나무라셨다는 정도만 기억날 뿐. 식사가 끝나고 옆집으로 돌아간 뒤, 동생은 내게 그 누나가 무섭다고 말했다. 나는 동의했다.
이런 식의 식사가 진행된 지 한 일주일 쯤 됐을까. 식사시간이 아닌데, 그 여자애가 홀로 나를 찾아왔다. 컴퓨터를 써도 되냐는 물음이었다. 글을 읽으며 우리 집에 컴퓨터가 있을거라곤 아무도 생각 못 했겠지만, 우리 집엔 컴퓨터가 있었다. 여름방학의 답답함을 달래주는 유일한 수단이 온라인게임이었으니까(참고로 난 초등학교 때 겟앰프드를 했다.) 하지만, 나는 내심 내 컴퓨터를 내주기 싫었다. 여느 남학생처럼 나만의 컬렉션이 저장된 컴퓨터를, 그것도 또래 여자애한테 보여준다는 건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더욱이 밥상머리에서 나한테 신경질적이었던 애에게 내가 왜?라는 입장이었다. 당장 컴퓨터를 쓰고 있지도 않았으면서도 컴퓨터를 내주기 싫다는 마음이 원래 그래왔던 것처럼 자리잡고 고집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 여자애는 치사하다며 돌아갔다가, 이내 다시 돌아와 조르기 시작했다.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나는 나보다도 작은 여자애한테 팔씨름에 이기면 쓰게 해주겠다는 내기를 걸었다. 내가 질 리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컴퓨터가 있는 방, 바닥에 둘이 엎드려서 팔씨름을 시작했다. 당연히 내가 이겼다. 그럼에도 여자애는 분해 하고 있었다. 정녕 자기가 이길 줄 알았던걸까?
그때였다. 승리감에 도취되어있던 내 등에 이 야비한 여자애가 올라타서 간지럼을 태우기 시작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난 간지럼에 참 약하다. 특히 겨드랑이부터 옆구리로 이어지는 라인은 경기를 일으키며 나를 미치게 했다. 등에 올라타 옆구리를 간질이는 여자애의 힘은, 팔씨름 때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었다. 입에서 침이 흐를 정도로 간지럼에 당하다가, 나는 반격을 위해 몸을 뒤집어 여자애 배에 올라탔다. 그리고 똑같이 겨드랑이부터 옆구리까지 간지럼을 태우기 시작했다. 효과는 미미했다. 별로 간지럽지 않아 하는 여자애의 태도에 분해서 참을 수 없었다. 나도 찾아내야만 했다, 그녀의 약점을. 그러다 찾은 곳이 허벅지 안쪽이었다. 내가 활어처럼 팔딱였듯이, 여자애도 반응이 폭발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기간이 좀 길었나보다. 여자애가 울기 시작했다. 나는 분했다. 자기가 먼저 덤벼들어서 반격했을 뿐인데 울어도 내가 울어야지 왜 자기가 우나? 결국 할아버지께 내가 혼나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예상은 빗나가질 않았다. 억울하지만 남자가 여자를 힘으로 괴롭히면 안된다는 훈계를 묵묵히 듣고 있어야 했고, 내가 훈계를 듣는 동안 여자애는 컴퓨터를 했다. 치가 떨리지 않을 수 없었다. 옆집 할아버지도 와서 거드셨다. 누나를 괴롭히면 안된다느니 하는 그런 내용이었다. 그때 처음 그 여자애가 내 멀기도 먼 친척 누나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래도 누나 소리는 제법 잘 나왔다. 티격태격은 종종 했지만, 그래도 방학 때는 또래가 귀하니까. 누나는 17살이었고, 도시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공부도 못하고 사고도 쳐서 시골로 강제 전학을 오게 됐다고 전해 들었다. 그 소식을 듣고 좀 쫄게 된 건 사실이다. 누나가 컴퓨터를 쓴다고 해도 저항하지 못한 것도 그 소식을 듣고서부터였다.
평화는 며칠가지 못했다. 동생이 아파서 도시에 있는 병원을 가기 위해 할머니와 떠났고, 나는 할아버지와 둘이 남게 됐다. 할아버지는 해 뜨면 논으로 밭으로 다니시고, 해지면 주무시는 천성이 농사꾼이셨는데, 그래서 집엔 항상 나와 컴퓨터 하러 온 누나뿐이었다. 컴퓨터를 쓰던 누나는 갑자기 날 부르더니 이게 뭐냐고 물어봤다. 내 컬렉션이었다. 지금은 보라고 해도 안 볼 찢어지는 화질의 일본 야동이었는데, 소리까지 크게 틀어놓고 이게 뭐냐고 내게 묻고 있었다. 초딩인 나도 아는데 고딩인 누나가 모를 리 없었다. 날 또 놀리고 싶은게였을테지.
야설이나 망가나 야동에서의 전개는 아니었다. 누나가 이를 계기로 날 유혹해서 날 어떻게 해보는 그런 그림은 나올 수가 없었다. 고딩이 초딩을 남자로 볼 턱이나 있나. 그러나 반대로는 달랐다. 초딩 입장에서 고딩은 너무 탐스러웠다. 근친에 대한 개념이 있긴 했지만, 먼 친척이라는데 근친이 맞나? 싶기도 했다. 그래서 오히려 내가 더 적극적으로 누나한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이런 거 본 지는 얼마 안됐는데, 해본 적은 없다, 누나는 해봤냐, 여자도 남자처럼 혼자 하냐, 누나도 하냐 등등. 지금 생각하면 어려서 할 수 있는 멘트였던 거 같다.
근데 이 발랑까진 누나는 하나하나 대답을 해주었다. 누나도 가끔 이런 영상을 본다는 것부터, 관계도 할 뻔 했으나 무서워서 안 했다는 이야기, 대신 혼자는 종종 한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섰다. 굉장히 최선을 다해서 섰다. 이 여자를 내 첫 성교육 교사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용솟음 쳤다. 그래서 당돌하게, 더 뻔뻔하게 물어봤다.
"누나꺼 보여주면 안돼?"
당연히 대답은 "NO."였다. 나중에 커서 여자친구한테 보여달라고 하라는 부가적인 답변도 받게 되었다. 그치만 이미 난 서있었고, 그 짧은 순간에 짱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럼 팬티 위로 만져보는건?"
이것도 당연히 까였다. 쉽지 않은 누나였다. 그치만 나도 그리 쉬운 놈은 아니었다. 그래서 컴퓨터 의자에 앉은 누나 옆으로 가, 허벅지에 간지럼을 태우기 시작했다. 누나는 또 자지러지기 시작했고, 나는 이 때를 밀어붙여야 한다고 판단해서 계속 졸라댔다. 누나는 일단 멈춰보라며 협상을 제안했고, 나는 손을 멈추고 이야길 들었다. 협상의 내용은 브라 위로 가슴만 잠깐 만지게 해준다는 내용이었다. 엄청난 성과지만, 그 당시 나는 실망했다. 나는 아래가 더 궁금했었으니까.
그래도 일단 브라 위로 가슴을 만지는 것부터 시작하면 될거라는 생각에 누나의 큰 티셔츠 위로 손을 살포시 올려보았다. 시각적으로 가슴이 엄청 큰 느낌은 아니었다. 항상 망가나 야동으로 기이한 사이즈의 가슴들을 학습했던 순수한(?) 아이의 눈이었으니까. 그래도 촉각으로 여자의 가슴을 만지는 건 모유를 먹은 이후로 처음이었으니, 아직까지도 기억한다. 내 첫 손맛은 '브라의 스펀지'였다. 그래도 작은 가슴은 아니었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다 뽕이었나? 싶었다. 실망했다. 실망은 약간의 분노로 치환되어 손에 힘을 주게 됐고, 브라의 스펀지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이건 여자의 가슴이 아니었다. 물론 지방의 촉감도 스펀지 너머로 느껴지긴 했으나, 일차적으로 내 손에 닿는 감촉은 티셔츠고, 그 다음이 스펀지였다. 가슴은, 유방은, 저 너머에 있어 닿을 수 없는 유니콘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이의를 제기했다. '브라' 위로 만지게 해준다고 했으니 '티셔츠'를 벗어달라고. 누나는 당황했다. 그냥 만지면 되지 그건 좀 부끄럽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협상했고, 누나 뒤에 앉아서 티셔츠 안으로 내 손을 넣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이전부터 느끼고 있었지만, 누나의 티셔츠 안으로 손이 들어갈 때, 유독 공기의 흐름이 달라진 게 느껴졌다. 무겁고도 뜨거운 공기는 내가 내뿜는 것인지, 누나가 내뿜는 것인지, 여름날의 태양의 조화인지 알 수 없었지만, 분명한 건 나와 누나 모두 뜨거워졌다는 것이었다. 백허그 하는 자세로 앉아서, 그 더운 날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붙어있었는데도 그 찝찝함이 불쾌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브라의 스펀지 감촉마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인간이 얼마나 간사한 동물이던가. 감사는 이내 더 큰 욕망으로 전이되어 브라 안에 빼꼼히 자리하고 있을 젖꼭지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이번엔 또 동의를 구하고, 또 협상을 할만큼 여유롭지 않은 나였다. 그래서 양손 모두 브라의 아래로 가서 위로 제낀 뒤 꼭지를 꼬집었다. 그 전까진 듣지 못했던 누나의 얄팍한 신음이 처음으로 터져나왔다. 천연 비아그라였다. 더 빳빳해져가는 내 물건을 누나의 엉덩이에 꼭 갖다댄 채 손으로는 누나의 젖꼭지를 유린하고 있었다. 다시 생각해도 인생 최초의, 그리고 최고의 손맛이 아니었나 싶다.
신음 사이로 그만하라는 누나의 말소리가 간간히 들려왔다. 들렸는데요? 못 들었습니다. 대신 티셔츠까지 한껏 끌어올려 누나의 상반신을 시각으로도 훑어야겠다는 일념 뿐이었다. 이내 실행했고, 누나는 의자 시트를 쥐어뜯고 있었다. 뒤에 앉아 있어서 뷰가 그리 좋진 않았다. 신음을 뱉는 누나의 얼굴 표정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예뻤다.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예쁨이었다. 지금이라면 키스를 했겠지만, 그땐 예쁜 여자를 주무를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고, 그래서 솔직히 말했다. 누나의 귀에다 대고 누나가 너무 예쁘다고 속삭였다.
그러자 누나가 내 오른손을 잡아 내렸다. 본격적인 저항인가? 라고 생각할 무렵, 내 손은 이미 누나의 반바지 위에 도착해있었고, 누나의 손과 함께 바지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제법 땀을 흘리고 있었는데, 누나는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누나의 습기는 사타구니에 몰려있었다. 그렇지만, 시오후키하는 영상을 하도 많이 봤던 터라, 그게 땀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까슬거리는 털을 지나 보지에 다다랐고, 어렵지 않게 한 구멍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가운데 손가락을 밀어 넣었는데, 신음보다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들렸다. 문득 돌아온 이성. 누나의 상태를 확인했는데 천천히 넣으라고 조언해주었다. 조언에 따라 천천히, 질의 주름을 셀 수 있을 정도로 느끼면서 누나의 안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할아버지의 경운기 엔진 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땀과 애액으로 범벅된 우리는 이제 서로에게서 떨어져야했다. 그 과정은 생각보다 일사분란했다. 내 손이 누나의 반바지에서 빠져나오는 건 초 단위였고, 그 사이에 누나의 신음은 마지막으로 터져나왔었다. 누나는 금새 브라의 매무새를 정리하고 티셔츠를 내린 뒤, 나에게 땀 좀 닦으라고 이야기하며 컴퓨터를 껐다. 그리곤 할아버지의 경운기 엔진이 꺼지기도 전에 집 밖으로 나가 옆집으로 돌아갔다. 나도 자리를 대충 정리하고 화장실에 가서 세수를 할 요량이었다. 상기된 얼굴이 터질것처럼 뜨겁다는 걸 의식한 게 그때였으니까. 그렇게 화장실로 가면서 나는, 방금 전까지도 누나의 안에 있던 내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을 눈 앞에 가져왔다. 여성호르몬의 짜릿한 향이 코를 찔렀다. 본능적으로 이건 맛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살짝 핥아보았다. 시큼하고 약간은 찌린 내음이 그렇게 자극적일 수가 없었다. 내 손이 아니라 누나의 보지를 직접 맛보는 상상을 하는 것까지도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손을 씻기가 너무 아까웠지만, 할아버지 경운기 엔진 소리가 꺼진 걸 눈치 챘기에 비누로 박박 손과 얼굴을 씻었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누나는 컴퓨터를 하러 오지 않았다. 동생과 병원에 갔던 할머니가 동생과 함께 돌아오셨기 때문에, 낮엔 집에 나와 동생이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잠깐의 불장난 이후, 누나에게 이상한 감정이 싹트기 시작했는데, 이내 이 감정은 방학이 끝나면 누나가 사라질 것 같다는 불안감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고등학교로 가면 남자친구도 생길 것 같고, 학교에서 늦게 돌아오니 마주칠 일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 누나와 또 한 번의 불장난을 소망하게 되었고, 동생과 양 쪽 어른들에게 들키지 않을 안전한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농번기의 시골은 그런 장소가 꽤나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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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의 친척누나와 오랜만에 연락이 닿아, 생각난 김에 글을 써봤습니다. 물론 지금은 그때의 이야기 서로 묻어두고서, 누나는 결혼한 채, 저는 여자친구 만나며 잘 살고 있답니다. 반응이 괜찮으면, 누나와 있었던 일, 그리고 다른 여자들과 만났던 이야기들도 시간 날 때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시골 아이들은 드세다.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도 괴물이 되어야했고, 그런 괴물이 되기에 난 선택받은 환경이었다. 서른을 바라보고 있는 필자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때에 벌써 지금의 키와 몸무게에 도달해있었다. 지금도 덩치가 크다는 이야길 듣는데, 무려 초등학생이 이런 피지컬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잠깐 집안 이야기를 하자면 우리 집은 지금도 그렇지만, 그땐 더 찢어지게 가난했다. 부모님은 변변찮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겨울엔 붕어빵 장사를 하셨고, 여름엔 뭘하고 돌아다니는지 모르게 집에 잘 안 들어오시곤 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나와 내 동생은 시골에 계신 조부모님 댁에 맡겨졌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었다. 혹자는 바람이 자신의 팔할을 키웠다지만, 나는 할머니가 나의 팔할을 키워내셨다.
시골동네가 다 그렇듯, 그나마 있는 또래라곤 내 6살 터울의 동생이 유일했다. 초등학교는 걸어서 1시간 반을 가야하는 곳이었는데, 돌이켜보면 어떻게 그 거리를 매일 걸어다녔나 싶다. 그래도 가야만 했고, 가는 게 즐거웠었다. 유일하게 주변 몇몇 동네에서 또래 아이들이 모이는 유일한 공간이 학교였으니까. 그래봤자 전교생 15명 정도의 시골 분교였다. 잘 기억나는 건 많이 없지만 그래도 남부럽지 않게 즐거운 학창시절이었었다. 행복은 비교하지 않는 데서 나오는거니까.
여름과 겨울에 방학을 하면 난 다시 혼자였다. 6살 터울의 동생은 같이 놀기에 너무 어리고 유치했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동생은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했었으니까. 내가 중학교를 들어가고 나서야 동생은 초등학교에 입학했었으니까. 여름방학의 해는 남들보다 길었고, 겨울방학의 달은 누구보다 오래 빛났다.
잠깐 또 옆집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내게는 7촌? 8촌?정도의 촌수를 가진 할아버지가 혼자 살고 계셨다. 그 집 할머니는 병으로 일찍 돌아가시고 할아버지 혼자 정정하게 살아계신 집이었다. 시골인심 덕에 우리 조부모님은 옆집 할아버지를 잘 챙기셨고, 주로 나를 시켜 옆집 할아버지께 식사하러 오시라고 하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이 시작한 지 얼마 안됐을 때였다. 여느 날처럼 옆집 할아버지 댁에 식사하러 오시라고 말씀드리러 갔는데, 그 집 마당에 못보던 차가 두 대 서있었고, 왁자지껄했다. 그 할아버지의 자식들, 나에게는 고모, 고모부라는 사람들이었다. 옆집 할아버지는 오늘은 자식들이랑 먹겠다며 나를 돌려보내셨고, 나는 그 사이에 또래 여자를 보게 됐다. 분명 나보다 나이는 많은 거 같은데, 나보다는 작은 여자애였다. 마르지도 통통하지도 않은 보통의 체형에 긴 머리를 묶어놓은 여자애. 학교에서 보던 또래 여자아이들과 달리 하얀 여자애. 그 여자의 첫 인상이었다.
다음 날엔 두 대의 차가 사라져있었고, 옆집 할아버지께 식사하러 오시라고 전한 뒤 먼저 집에 돌아오자, 옆집 할아버지와 그 여자애가 같이 우리 집에 왔다. 여자애는 종일 짜증을 냈다. 더워서인지, 시골반찬이 입에 안 맞아서였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던 중 그 짜증이 낯을 가리고 있던 내게 뻗쳤다.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짜증에 대해 옆집 할아버지가 크게 나무라셨다는 정도만 기억날 뿐. 식사가 끝나고 옆집으로 돌아간 뒤, 동생은 내게 그 누나가 무섭다고 말했다. 나는 동의했다.
이런 식의 식사가 진행된 지 한 일주일 쯤 됐을까. 식사시간이 아닌데, 그 여자애가 홀로 나를 찾아왔다. 컴퓨터를 써도 되냐는 물음이었다. 글을 읽으며 우리 집에 컴퓨터가 있을거라곤 아무도 생각 못 했겠지만, 우리 집엔 컴퓨터가 있었다. 여름방학의 답답함을 달래주는 유일한 수단이 온라인게임이었으니까(참고로 난 초등학교 때 겟앰프드를 했다.) 하지만, 나는 내심 내 컴퓨터를 내주기 싫었다. 여느 남학생처럼 나만의 컬렉션이 저장된 컴퓨터를, 그것도 또래 여자애한테 보여준다는 건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더욱이 밥상머리에서 나한테 신경질적이었던 애에게 내가 왜?라는 입장이었다. 당장 컴퓨터를 쓰고 있지도 않았으면서도 컴퓨터를 내주기 싫다는 마음이 원래 그래왔던 것처럼 자리잡고 고집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 여자애는 치사하다며 돌아갔다가, 이내 다시 돌아와 조르기 시작했다.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나는 나보다도 작은 여자애한테 팔씨름에 이기면 쓰게 해주겠다는 내기를 걸었다. 내가 질 리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컴퓨터가 있는 방, 바닥에 둘이 엎드려서 팔씨름을 시작했다. 당연히 내가 이겼다. 그럼에도 여자애는 분해 하고 있었다. 정녕 자기가 이길 줄 알았던걸까?
그때였다. 승리감에 도취되어있던 내 등에 이 야비한 여자애가 올라타서 간지럼을 태우기 시작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난 간지럼에 참 약하다. 특히 겨드랑이부터 옆구리로 이어지는 라인은 경기를 일으키며 나를 미치게 했다. 등에 올라타 옆구리를 간질이는 여자애의 힘은, 팔씨름 때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었다. 입에서 침이 흐를 정도로 간지럼에 당하다가, 나는 반격을 위해 몸을 뒤집어 여자애 배에 올라탔다. 그리고 똑같이 겨드랑이부터 옆구리까지 간지럼을 태우기 시작했다. 효과는 미미했다. 별로 간지럽지 않아 하는 여자애의 태도에 분해서 참을 수 없었다. 나도 찾아내야만 했다, 그녀의 약점을. 그러다 찾은 곳이 허벅지 안쪽이었다. 내가 활어처럼 팔딱였듯이, 여자애도 반응이 폭발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기간이 좀 길었나보다. 여자애가 울기 시작했다. 나는 분했다. 자기가 먼저 덤벼들어서 반격했을 뿐인데 울어도 내가 울어야지 왜 자기가 우나? 결국 할아버지께 내가 혼나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예상은 빗나가질 않았다. 억울하지만 남자가 여자를 힘으로 괴롭히면 안된다는 훈계를 묵묵히 듣고 있어야 했고, 내가 훈계를 듣는 동안 여자애는 컴퓨터를 했다. 치가 떨리지 않을 수 없었다. 옆집 할아버지도 와서 거드셨다. 누나를 괴롭히면 안된다느니 하는 그런 내용이었다. 그때 처음 그 여자애가 내 멀기도 먼 친척 누나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래도 누나 소리는 제법 잘 나왔다. 티격태격은 종종 했지만, 그래도 방학 때는 또래가 귀하니까. 누나는 17살이었고, 도시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공부도 못하고 사고도 쳐서 시골로 강제 전학을 오게 됐다고 전해 들었다. 그 소식을 듣고 좀 쫄게 된 건 사실이다. 누나가 컴퓨터를 쓴다고 해도 저항하지 못한 것도 그 소식을 듣고서부터였다.
평화는 며칠가지 못했다. 동생이 아파서 도시에 있는 병원을 가기 위해 할머니와 떠났고, 나는 할아버지와 둘이 남게 됐다. 할아버지는 해 뜨면 논으로 밭으로 다니시고, 해지면 주무시는 천성이 농사꾼이셨는데, 그래서 집엔 항상 나와 컴퓨터 하러 온 누나뿐이었다. 컴퓨터를 쓰던 누나는 갑자기 날 부르더니 이게 뭐냐고 물어봤다. 내 컬렉션이었다. 지금은 보라고 해도 안 볼 찢어지는 화질의 일본 야동이었는데, 소리까지 크게 틀어놓고 이게 뭐냐고 내게 묻고 있었다. 초딩인 나도 아는데 고딩인 누나가 모를 리 없었다. 날 또 놀리고 싶은게였을테지.
야설이나 망가나 야동에서의 전개는 아니었다. 누나가 이를 계기로 날 유혹해서 날 어떻게 해보는 그런 그림은 나올 수가 없었다. 고딩이 초딩을 남자로 볼 턱이나 있나. 그러나 반대로는 달랐다. 초딩 입장에서 고딩은 너무 탐스러웠다. 근친에 대한 개념이 있긴 했지만, 먼 친척이라는데 근친이 맞나? 싶기도 했다. 그래서 오히려 내가 더 적극적으로 누나한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이런 거 본 지는 얼마 안됐는데, 해본 적은 없다, 누나는 해봤냐, 여자도 남자처럼 혼자 하냐, 누나도 하냐 등등. 지금 생각하면 어려서 할 수 있는 멘트였던 거 같다.
근데 이 발랑까진 누나는 하나하나 대답을 해주었다. 누나도 가끔 이런 영상을 본다는 것부터, 관계도 할 뻔 했으나 무서워서 안 했다는 이야기, 대신 혼자는 종종 한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섰다. 굉장히 최선을 다해서 섰다. 이 여자를 내 첫 성교육 교사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용솟음 쳤다. 그래서 당돌하게, 더 뻔뻔하게 물어봤다.
"누나꺼 보여주면 안돼?"
당연히 대답은 "NO."였다. 나중에 커서 여자친구한테 보여달라고 하라는 부가적인 답변도 받게 되었다. 그치만 이미 난 서있었고, 그 짧은 순간에 짱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럼 팬티 위로 만져보는건?"
이것도 당연히 까였다. 쉽지 않은 누나였다. 그치만 나도 그리 쉬운 놈은 아니었다. 그래서 컴퓨터 의자에 앉은 누나 옆으로 가, 허벅지에 간지럼을 태우기 시작했다. 누나는 또 자지러지기 시작했고, 나는 이 때를 밀어붙여야 한다고 판단해서 계속 졸라댔다. 누나는 일단 멈춰보라며 협상을 제안했고, 나는 손을 멈추고 이야길 들었다. 협상의 내용은 브라 위로 가슴만 잠깐 만지게 해준다는 내용이었다. 엄청난 성과지만, 그 당시 나는 실망했다. 나는 아래가 더 궁금했었으니까.
그래도 일단 브라 위로 가슴을 만지는 것부터 시작하면 될거라는 생각에 누나의 큰 티셔츠 위로 손을 살포시 올려보았다. 시각적으로 가슴이 엄청 큰 느낌은 아니었다. 항상 망가나 야동으로 기이한 사이즈의 가슴들을 학습했던 순수한(?) 아이의 눈이었으니까. 그래도 촉각으로 여자의 가슴을 만지는 건 모유를 먹은 이후로 처음이었으니, 아직까지도 기억한다. 내 첫 손맛은 '브라의 스펀지'였다. 그래도 작은 가슴은 아니었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다 뽕이었나? 싶었다. 실망했다. 실망은 약간의 분노로 치환되어 손에 힘을 주게 됐고, 브라의 스펀지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이건 여자의 가슴이 아니었다. 물론 지방의 촉감도 스펀지 너머로 느껴지긴 했으나, 일차적으로 내 손에 닿는 감촉은 티셔츠고, 그 다음이 스펀지였다. 가슴은, 유방은, 저 너머에 있어 닿을 수 없는 유니콘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이의를 제기했다. '브라' 위로 만지게 해준다고 했으니 '티셔츠'를 벗어달라고. 누나는 당황했다. 그냥 만지면 되지 그건 좀 부끄럽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협상했고, 누나 뒤에 앉아서 티셔츠 안으로 내 손을 넣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이전부터 느끼고 있었지만, 누나의 티셔츠 안으로 손이 들어갈 때, 유독 공기의 흐름이 달라진 게 느껴졌다. 무겁고도 뜨거운 공기는 내가 내뿜는 것인지, 누나가 내뿜는 것인지, 여름날의 태양의 조화인지 알 수 없었지만, 분명한 건 나와 누나 모두 뜨거워졌다는 것이었다. 백허그 하는 자세로 앉아서, 그 더운 날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붙어있었는데도 그 찝찝함이 불쾌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브라의 스펀지 감촉마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인간이 얼마나 간사한 동물이던가. 감사는 이내 더 큰 욕망으로 전이되어 브라 안에 빼꼼히 자리하고 있을 젖꼭지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이번엔 또 동의를 구하고, 또 협상을 할만큼 여유롭지 않은 나였다. 그래서 양손 모두 브라의 아래로 가서 위로 제낀 뒤 꼭지를 꼬집었다. 그 전까진 듣지 못했던 누나의 얄팍한 신음이 처음으로 터져나왔다. 천연 비아그라였다. 더 빳빳해져가는 내 물건을 누나의 엉덩이에 꼭 갖다댄 채 손으로는 누나의 젖꼭지를 유린하고 있었다. 다시 생각해도 인생 최초의, 그리고 최고의 손맛이 아니었나 싶다.
신음 사이로 그만하라는 누나의 말소리가 간간히 들려왔다. 들렸는데요? 못 들었습니다. 대신 티셔츠까지 한껏 끌어올려 누나의 상반신을 시각으로도 훑어야겠다는 일념 뿐이었다. 이내 실행했고, 누나는 의자 시트를 쥐어뜯고 있었다. 뒤에 앉아 있어서 뷰가 그리 좋진 않았다. 신음을 뱉는 누나의 얼굴 표정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예뻤다.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예쁨이었다. 지금이라면 키스를 했겠지만, 그땐 예쁜 여자를 주무를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고, 그래서 솔직히 말했다. 누나의 귀에다 대고 누나가 너무 예쁘다고 속삭였다.
그러자 누나가 내 오른손을 잡아 내렸다. 본격적인 저항인가? 라고 생각할 무렵, 내 손은 이미 누나의 반바지 위에 도착해있었고, 누나의 손과 함께 바지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제법 땀을 흘리고 있었는데, 누나는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누나의 습기는 사타구니에 몰려있었다. 그렇지만, 시오후키하는 영상을 하도 많이 봤던 터라, 그게 땀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까슬거리는 털을 지나 보지에 다다랐고, 어렵지 않게 한 구멍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가운데 손가락을 밀어 넣었는데, 신음보다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들렸다. 문득 돌아온 이성. 누나의 상태를 확인했는데 천천히 넣으라고 조언해주었다. 조언에 따라 천천히, 질의 주름을 셀 수 있을 정도로 느끼면서 누나의 안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할아버지의 경운기 엔진 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땀과 애액으로 범벅된 우리는 이제 서로에게서 떨어져야했다. 그 과정은 생각보다 일사분란했다. 내 손이 누나의 반바지에서 빠져나오는 건 초 단위였고, 그 사이에 누나의 신음은 마지막으로 터져나왔었다. 누나는 금새 브라의 매무새를 정리하고 티셔츠를 내린 뒤, 나에게 땀 좀 닦으라고 이야기하며 컴퓨터를 껐다. 그리곤 할아버지의 경운기 엔진이 꺼지기도 전에 집 밖으로 나가 옆집으로 돌아갔다. 나도 자리를 대충 정리하고 화장실에 가서 세수를 할 요량이었다. 상기된 얼굴이 터질것처럼 뜨겁다는 걸 의식한 게 그때였으니까. 그렇게 화장실로 가면서 나는, 방금 전까지도 누나의 안에 있던 내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을 눈 앞에 가져왔다. 여성호르몬의 짜릿한 향이 코를 찔렀다. 본능적으로 이건 맛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살짝 핥아보았다. 시큼하고 약간은 찌린 내음이 그렇게 자극적일 수가 없었다. 내 손이 아니라 누나의 보지를 직접 맛보는 상상을 하는 것까지도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손을 씻기가 너무 아까웠지만, 할아버지 경운기 엔진 소리가 꺼진 걸 눈치 챘기에 비누로 박박 손과 얼굴을 씻었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누나는 컴퓨터를 하러 오지 않았다. 동생과 병원에 갔던 할머니가 동생과 함께 돌아오셨기 때문에, 낮엔 집에 나와 동생이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잠깐의 불장난 이후, 누나에게 이상한 감정이 싹트기 시작했는데, 이내 이 감정은 방학이 끝나면 누나가 사라질 것 같다는 불안감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고등학교로 가면 남자친구도 생길 것 같고, 학교에서 늦게 돌아오니 마주칠 일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 누나와 또 한 번의 불장난을 소망하게 되었고, 동생과 양 쪽 어른들에게 들키지 않을 안전한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농번기의 시골은 그런 장소가 꽤나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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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의 친척누나와 오랜만에 연락이 닿아, 생각난 김에 글을 써봤습니다. 물론 지금은 그때의 이야기 서로 묻어두고서, 누나는 결혼한 채, 저는 여자친구 만나며 잘 살고 있답니다. 반응이 괜찮으면, 누나와 있었던 일, 그리고 다른 여자들과 만났던 이야기들도 시간 날 때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